[정규재 칼럼] 국제 환율전쟁 아닌 '중국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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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환율논쟁 적극 태클하고, 중국은 보편적 가치 받아들여야정부가 위안화 환율 문제를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에 올리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다. 물론 미 · 중 어느 편에 서더라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되고 자칫 원화의 동반 절상이 예고된다면 이는 결코 환영할 만한 사태가 아니라는 우려는 현실적이다. 또 환율조정에 합의하지 못할 바에는 금융안전망 구축 등 당초 의제에 집중하자는 전략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최대의 중심주제를 배제한 채 지엽말단을 다룬다고 해봤자 G20 회의는 김빠진 맥주가 되고 말거나 정상들이 모여 밥이나 먹는 2류급 회의체가 되고 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20에서의 환율 논의는 우리의 외교능력을 시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물러설 이유도 없다. 그저 매끄럽게 끝난다고 성공적인 회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지금의 환율전쟁이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와 같은 미 · 일 양자 문제가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을 배싱(bashing)하는 1 대 다(多)의 내밀한 정치구조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미국이 환율 전쟁의 전선을 애써 중국에 국한시키고 있는 것에서도 사태의 본질은 잘 드러난다. 외형상은 환율 갈등이지만 센카쿠 열도 문제와 중국의 희토류 전면 금수가 초래한 충격, 천안함 사건을 포함한 한반도 정치 갈등, 외연을 확장해가는 중국의 국제적 파워 등 일련의 문제군이 위안화 환율 공방전에 얽혀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공공연히 (환율 조작국에서) "일본은 제외한다"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 국제통화기금(IMF) 금융회의에서 보았듯이 국제 사회도 입장 정리에 매우 곤혹스런 모습이다. 그러나 중국 반체제 인사에 대한 노벨상 수여 등이 겹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중국이 덩치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 · 중 간 마늘 분쟁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의 중국인 선장 체포에 대응해 희토류 수출 전면 금지라는 무차별적인 실력행사로 나온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지역 패권적 태도는 동북아에서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높여놓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조작하고 그것으로 축적한 외환보유액을 지렛대 삼아 그리스와 유럽을 매수하고 아프리카 자원을 탐식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중국으로서는 경청해야할 대목이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보편적 행동 준칙이 아니라 오로지 단기적 국가 이익에 매몰되고, 막무가내식 실력 행사를 선호하는 국가라면 이는 세계적 두통거리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직면한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아직은 개도국이고 싶어하는 중국의 입장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충분한 힘을 갖춘 대국'이라는 사실을 중국만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중국은 무엇보다 위안화 환율을 시장가치에 걸맞게 재조정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국제 관계를 정비해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북한 문제 역시 민주주의와 평화질서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다루는 것이 옳다. 중국이 가치있는 행동 준칙에 일치하는 자기책임을 다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에도 절대 부합한다. 이번 미 · 중 분쟁이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G20 의장국으로서 우리에게 이 문제가 불리하게만 작용할 이유도 없다. 세련된 전략이 필요하겠지만 호혜성이라는 국제경제의 기본 원칙을 유지한다면 이는 결코 위험한 노선도 아니다.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 모든 친구를 잃게 된다. 중국은 북한 문제에 대해 "새 친구를 사귄다고 오랜 친구를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해왔다. 지금 한국 정부가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명제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