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 '통 큰' 패권국가 되려면

자유무역 룰 지킬 때 주변국 수긍
통제사회 벗어나 민주화 이뤄야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일본으로부터 백기 항복을 받아내고 기세등등하던 중국의 국제적 체면이 요즘 말이 아니다. 노벨상 심사위원회가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에게 평화상을 주기로 발표하자 이에 발끈한 중국 정부는 "국내법상 범법자에게 무슨 노벨 평화상이냐"며 노르웨이 정부에 항의하고 나섰다. 일본과의 영토분쟁에서 초강수를 두어 재미를 보고,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에 맞서며 한창 잘나가는 베이징으로선 유럽의 조그만 나라 노르웨이에 으르렁거릴 만하다.

그런데 이번엔 베이징이 뭔가 악수를 두는 것 같다. '중국의 국내법과 노벨상 심사위원회의 결정 사이에 어느 것이 전 세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인권문제는 중국의 아킬레스 건이다. 자국민에겐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을 차단해 버렸지만,이미 미국 유럽은 물론 중화권까지 류샤오보를 지지하는 네티즌의 열기가 불타오르고 있다. 중국이 다가오는 시대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가 되려면 이번 일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중국이 진정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패권국가가 되고 싶다면 단순히 경제력과 군사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 세계 모든 나라가 받아들일 수 있는 '중국식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대영제국의 함대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막강한 경제력이나 군사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국식 '민주주의'라는 시대를 앞서가는 보편적 가치가 있었다. 2차대전 후 '팍스 아메리카'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자유무역'이란 보편적 가치를 미국이 주도해 세계경제의 번영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내세울 수 있는 새로운 보편적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2000년간 호령해왔던 중화사상? 이런 시대착오적인 오만을 부활시켰다가는 동아시아의 지역 패권은커녕 주변 국가들의 경계만 잔뜩 불러일으킬 것이다. 다가올 제18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돼 2012년부터 중국을 이끌어갈 제5세대 지도자들이 세계가 수궁하는 중국식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중화사상의 향수에서 벗어나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으로서 자유무역을 위한 공정한 게임의 룰에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번 일본과의 분쟁에서 희토류를 들고 보복에 나선 것은 대국답지 못한 치졸한 행동이다. 불만이 있다고 상대국 경제의 뿌리를 뒤흔들 정도의 과잉보복을 한다면,이는 대응보복을 낳고 결국 화살이 자국에 돌아온다. 이미 각국 기업들은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쩨쩨하게 굴지 않고 통 큰 교역을 했다. 한때는 주변국의 조공 횟수를 제한한 적이 있는데 이는 상대가 하나를 가져오면 두서너 배로 통 크게 되돌려 주느라 재정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를 볼 때 민주화를 안하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개발 독재라는 말이 있듯이 빠른 성장을 통해 배고픈 국민들에게 빵을 주면 대개 1인당 소득이 4000~6000달러 수준까지는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이 이 수준을 넘어서면 국민은 빵이 아닌 자유를 원한다. 88서울올림픽 이후 소득 4435달러 수준에서 민주화 욕구가 폭발한 한국이 좋은 예다.

민주화는 중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지금같이 외국자본을 유치해 TV나 열심히 조립해 가지고는 소득을 1만달러 이상 높이기 힘들다. 인간의 창조적 활동은 통제된 사회에선 절대 나올 수 없다. 앞으로 10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제5세대 지도자들의 과제는 세계가 수궁하는 중국식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 주변국과 같이 번영하며 존경받는 국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안세영 < 서강대 교수·국제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