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일하는 노인

갤럽이 2008년 미국 전역의18~85세 남녀 34만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더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어제 행복 기쁨 스트레스 걱정 분노 슬픔 중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를 묻는 항목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빈도가 18세부터 줄어들다가 50세를 기점으로 다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반면 스트레스와 걱정,분노의 감정은 나이를 먹을수록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뭘까.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심리적 변화,뇌 · 호르몬 등의 생리적 변화의 영향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체득한 지혜로 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되는 데다 일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인간관계 갈등 같은 게 줄어든 것도 한몫했을 게다. 몸은 늙고 기력이 쇠하는 대신 심리적 부담이 적어지면서 행복감이 커지는 셈이다. 보톡스까지 맞아가면서 젊어 보이려고 기를 쓰는 세상이지만 실은 늙어가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란 뜻도 된다. 그러나 건강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늙고 병든데다 가난하기까지 한 삶은 더없이 팍팍하다. 그렇다고 마냥 자식들에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먹고 살기가 어렵다 보니 병든 부모를 방치하다시피 하고,누가 부양하느냐를 놓고 형제자매끼리 다투는 세상 아닌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일거리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도 취직이 어려운 판이니 남은 건 허드렛일 뿐이다. 여유 있게 소일하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일터로 내몰리는 것이다.

우리 노인들의 상당수도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모양이다. 통계청의 '2010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0.1%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아이슬란드(35.0%)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더구나 55~79세 인구의 60.1%가 앞으로 취업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 이유가 대부분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라니 처지를 짐작할 만하다.

우리는 이미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1%를 넘어섰고,2018년에는 그 비율이 14%로 높아져 고령사회로 들어서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조만간 국가 생산력이 떨어지고 부양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노인들이 생존형 허드렛일에서 벗어나 경륜을 활용하고 보람도 느끼게 해주는 게 최선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