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마비 등 난치병 '치료의 문' 열린다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첫 임상

신경ㆍ근육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환자별 맞춤치료 가능
생명윤리 논란 다시 불거질 듯

배아줄기세포 유래 치료제의 첫 임상시험 돌입은 인류의 난치병 극복 도전사에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시험이 성공할 경우 사지마비와 암 등 난치병 치료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정란 유래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는 특정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시켜 맞춤치료가 가능하다. 한 번 만든 세포주는 지속적으로 계대(繼代) 배양할 수 있어 이론상 거의 무한대로 다수의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 반면 골수 제대혈(탯줄혈액) 등에서 추출하는 성체줄기세포는 분화가 어느 정도 끝난 세포에서 소량의 줄기세포를 분리해 사용하기 때문에 분화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또 자신의 신체에서 추출했거나 타인으로부터 기증받은 성체줄기세포주는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한두 차례에 불과하다. 다만 성체줄기세포는 윤리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 있고 그동안 가장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해 축적된 연구성과가 엄청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는 3200여건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치료용 성체줄기세포주가 등록돼 있다. 이에 비해 수정란 유래 배아줄기세포주는 전 세계적으로 350~500종이 확립돼 있고 이 중 국내엔 차병원의 35종을 포함해 50여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에 미국에서 배아줄기세포 유래 희소돌기아교전구세포(GRNOPC1)를 이용한 척추손상 치료법 임상시험을 승인한 것은 그동안 논란이 돼온 배아줄기세포 치료제의 안전성이 상당 부분 검증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배아줄기세포치료주를 인체에 도입하면 '테라토마'라 불리는 기형종이 형성되지 않는지,면역체계가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지,신경통증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지 등 안전성 여부에 대한 여러 의문이 제기돼왔다. 제론사는 이번 임상시험 시행에 앞서 진행한 쥐 실험 결과 테라토마가 나타나지 않아 GRNOPC1이 다른 세포로 분화되지 않고 척수손상으로 파괴된 신경수초를 중점적으로 재생시킴을 입증했다.

유효성도 쥐 실험에서 어느 정도 입증됐다. 척수손상을 입은 쥐는 7일 만에 GRNOPC1 주사를 맞은 후 운동능력이 좋아지고 마비가 크게 개선됐다. 손상된 신경수초가 재생되고 손상 부위 주변에서 신경세포도 다시 자라났다.


미국 애틀랜타 셰퍼드센터에서 첫 임상시험에 들어간 환자는 흉추손상 환자.정형민 차바이오앤디오스텍 연구본부 사장은 "흉추손상은 주로 심한 교통사고나 추락으로 생기는데 대체로 하체와 함께 방광과 장기능이 마비되기 십상"이라며 "이번 배아줄기세포 치료로 6개월 후쯤 어떤 드라마틱한 치료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번 임상 시험 돌입으로 윤리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부시 전 행정부와는 달리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해 생명윤리를 거스르는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보수 진영의 공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 줄기세포다양한 조직과 장기로 분화될 수 있는 줄기세포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수정란 유래 배아줄기세포=정자와 난자를 인공수정시켜 얻은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한 것으로 분화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이식 후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황우석 박사 등이 선도적으로 개발했다. 핵을 제거한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해 얻은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만든다. 면역거부반응이 거의 없으나 분화능력이 수정란 유래 배아줄기세포보다 떨어진다.

▼성체줄기세포=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골수 태반 탯줄 지방조직 등에서 소량의 줄기세포를 분리한 것으로 윤리적 논란을 피해갈 수 있으나 분화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