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문맹 퇴치에 나설 때

중구난방식 주장은 갈등만 키워
여론 주도층부터 이해도 높여야
1960~70년대의 대학생 농촌 봉사활동에서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한글 문맹퇴치였다. 초등학교 교육기회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원활한 사회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거국적인 한글 문맹퇴치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도 아이들이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열심히 암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글을 깨우치게 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도 담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읽고(Reading) 쓰고(wRiting) 셈하는(aRithmetic) 3R 교육을 받고 있어 한글 문맹 문제는 거의 없다.

한글 문맹 못지않게 경제학 문맹도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지금은 아파트 시장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뜸하지만 지난 정부 시절에는 분양가를 둘러싸고 수많은 토론이 있었다. 1998년 민영주택에 이어 1999년에 전면적으로 분양가가 자율화됐지만,서울도시개발공사가 상암동에 지은 아파트에서 분양가 대비 40% 정도의 폭리를 취했다는 한 시민단체의 의로운(?) 고발을 계기로 상한제가 다시 도입됐다. 이후 수많은 논객들이 아파트 가격 안정을 위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은 기존 아파트 시장에서 일정 시점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고,신규 아파트는 기존 아파트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에 이를 때까지 일정 기간 공급 곡선을 따라 지어진다는 기본 원리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으로 학문과 사상이 발전하고 새로운 창조가 이뤄진 것과는 달리 구성원 간 갈등만 증폭시켰을 뿐이다. 이는 대부분의 논객들의 머릿속에 기존 아파트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의 핵심 사안이었던 기업집단 내 의사결정 방식 문제도 주식회사 제도의 운영 원리를 간과했다. 회사의 형태는 경영진의 잘못이 출자자에게 미칠 수 있는 피해(외부불경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초기의 합명회사에서는 회사가 도산했을 때 출자자는 출자금은 물론 자신의 사재(私財)를 털어 빚을 갚는 무한책임을 졌다. 참여하는 사람이 적고 자금 동원도 어려워 합자회사가 등장했고,출자자 중 일부는 회사가 도산할 때 출자금 한도 내에서만 피해를 감당하는 유한책임을 졌다.

이후 출자자들의 피해를 더욱 줄일 수 있는 주식회사가 나왔고 점차 주식시장도 발달했다. 주식회사의 주주는 모두 유한책임을 지며,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의 회사 전망이 어둡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다. 주식시장이 출자자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탈출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많은 주주가 참여하는 주식회사 제도는 의사결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 소수의 대표단에 의사결정 권한을 집중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주주들은 주식을 팔고 떠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물론 그 다른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지만,대부분의 주주들에게는 목소리를 내는 비용이 주식을 팔고 떠나는 비용보다 크다. 또한 기업집단 내의 내부거래에 대해서도 별다른 성찰 없이 대부분 '부당'으로 간주하는 것도 경제 이해부족 탓이다. 중간재 가격을 기업집단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달리 설정하는 것은 이윤 극대화 원리에 의한 것이다. 중간재 시장과 최종 생산물 시장의 경쟁 상황에 따라 중간재 가격이 기업집단 내적 · 외적으로 같아질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다. 계열기업에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 부당한 것은 아니다.

경제문맹 퇴치가 모든 국민을 경제 전문가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 주도층의 경제문맹은 심각한 폐해를 유발하므로 이의 퇴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용 < 한국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