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성미산'은 또 하나의 학교

앞산 뒷산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책에선 못 배우는 자연 지켰으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의 홈페이지에 작은 들썩임이 있었다. 성미산 지킴이를 하던 한 아빠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서울에는 성미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그리고 그 산을 지키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성미산 지킴이라고 부른다.

성미산은 서울 성산동에 자리 잡은 해발 66m의 나지막한 산이다. 그곳을 처음 봤을 때는 두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산이 다 있는 걸까. 공터만 보면 무조건 개발부터 하고 보는 게 요즘인지라 그곳에 올라 나무 등걸을 툭툭 쳐보고 축축한 땅 냄새를 맡았을 때는 신기하기만 했다. 도심 속에서 아주 오랜만에 심호흡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산으로 한 사학재단의 초 · 중 · 고교가 이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뒤 중장비를 동원한 공사가 강행됐다. 성미산 마을 주민들은 공사 현장에 천막을 치고 당번을 정해 몇 달째 산을 지키고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역시 성미산 마을을 구성하는 하나의 단위로 그 아빠는 그날 성미산을 지키는 당번이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의 제목은 '어제 ◆◆아빠가 다치셨어요. ' 제목만 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 십상이겠지만 성미산에 관련된 일이라면 긴장부터 된다. 얼마 전 그곳에서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몸싸움 같은 건 아니었다. 공사 현장을 지킬 사람이 없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가다가 어둠 속에서 나무에 부딪혀 이마가 찢긴 사고라고 했다. 댓글이 잇달아 달렸다. 부상이 걱정되지만 그 정도라 다행이라고 다들 안도했다. 병원에 도착해 이마를 꿰맨 그 아빠는 자신의 상처보다도 비어 있을 천막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했다.

이제 둘째는 네 살,어린이집에 나간 지 두어 달이 다 되어온다.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를 깨우는 주문 같은 한마디는 바로 "놀러가자"이다. 마음껏 뛰어놀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린이집 근처에는 뛰어놀 공간이 없다. 아이들은 줄을 서서 한강에도 가고, 근처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에도 갔다가, 택시를 타고 조금 먼 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 한강까지의 거리는 어른 걸음으로 10분 정도.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길은 자꾸만 늦춰진다. 곳곳이 찻길인데다 대부분의 골목 또한 차들이 지나다닌다. 차들이 지나갈 때까지 아이들은 수시로 길 한쪽 담벼락에 찰싹 붙어 서 있어야 한다. 아이들과 인솔 교사들은 놀러가기도 전에 반은 지친다.

우리 어릴 땐 어느 동네에나 뒷산,앞산으로 불리던 놀이터가 있었다. 산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개발 틈새에 난 공터였던 그곳에서 어린 시절 우리는 마음껏 뛰어놀았다. 호박꽃으로 초롱불도 만들고 흙으로 과자도 빚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앞산,뒷산이라는 말 대신 앞동과 뒷동 아파트가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성미산을 좋아한다. 어린 둘째는 성미산이란 이름도 아직 모른다. 그냥 산에 놀러갔다 왔다고만 한다. 그곳에서 벌레를 봤다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이들의 부모들이 지키려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유년 시절 앞산과 뒷산에서 놀던 그 추억이다.

예정대로라면 산을 허문 그 자리에는 학교가 들어설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곳은 우리에게 또 다른 학교였다. 어린아이들도 걷기 쉬운 성미산은 그동안 아이들에게 뛰어난 생태 학습장이 돼 주었다.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들의 보고였다.

어릴 적 성미산을 다녀왔던 큰애는 아직도 그곳에서 보았던 식물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운다. 벌개미취,때죽나무,닭의장풀,무릇,뽀리뱅이,며느리배꼽….성산동에는 아직 성미산이 있다. 이미 한쪽이 허물어져 수십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지만 아직도 성미산이라는 작은 학교가, 놀이터가 있다.

하성란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