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화장실 경영

재래식 화장실은 고약했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대책 없는 일이 생기는 건 물론 실수로 옷에 오물이 묻는 일도 다반사였다. 여름이면 구더기와 파리가 끓고,쭈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역한 냄새에 코를 막아야 했다. 오죽하면 처갓집과 변소는 멀리 있을수록 좋다고 했을까.

수세식 화장실,특히 좌변기가 일반화된 뒤 상황은 바뀌었다. 학교나 사무실 어디서나 자주 찾는 친근한 생활공간의 하나가 된 게 그것이다. 남녀 모두 신문 잡지 등을 읽는 독서실(?)로 사용하는가 하면 짬짬이 들러 옷차림을 바로잡고 머리를 식히는 기분전환 장소로도 쓴다. 혼자만의 공간인데다 꼼짝없이 보게 된다 여겨서일까. 공공화장실엔 낙서와 광고가 끊이지 않는다. 예전에 흔하던 낯 뜨거운 내용이나 그림은 줄어들었지만 대학 화장실의 경우 여전히 낙서 투성이다. 동아리 회원이나 아르바이트생 모집부터 성형외과 선전까지 광고도 수두룩하다.

음식점이나 술집,유통업체에선 아예 화장실을 마케팅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레스토랑 손님 중 75%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술집이나 운동경기장 관람객은 세 번 이상 드나든다고 하는 만큼 잘만 하면 확실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셈이다.

매장 내 이벤트를 안내하거나 요일별 특선 메뉴,안주 고르는 법 등을 소개하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회사 경영과 관련된 소통 장소로 쓰는 기업도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음료수를 들고 탈 땐 뚜껑을 잘 닫아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합시다'같은 엘리베이터 매너부터 최고경영자(CEO) 메시지,신제품 설명이나 회계 용어 같은 업무 관련 내용까지 화장실 문이나 벽면에 게시한다는 것이다. 화장실은 휴식공간이자 해우소(解憂所:근심을 더는 곳)다. 상사한테 싫은 소리를 듣거나 누군가와 언짢은 얘기를 주고 받아 속상할 때,면접이나 보고 · 발표를 앞두고 잔뜩 긴장했을 때,시간 없는데 일은 영 안풀릴 때 화장실을 찾으면 뒤숭숭했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다.

이런 화장실에 사장님 말씀이나 신제품 설명,회계용어까지 써 붙인다는 얘기다.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터인즉 효과는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휴대폰 덕(?)에 화장실에서조차 조용히 지낼 자유를 빼앗긴 마당에 업무 관련 내용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건 좀 서글프다. 소통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 싶은 까닭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