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A매치데이…퀵 타고 '하루 두 탕'

17일 대기업ㆍ은행 대거 시험, 응시생들 "한 곳이라도 더…"
최대 스펙 '토익' 시험도 겹쳐
에쓰오일의 신입사원 공개채용 시험이 치러진 17일 낮 12시40분께 경희대 서울캠퍼스.종료시간보다 10분 먼저 고사장을 나온 박인규씨(28)는 고사장 앞에 서 있던 퀵서비스 오토바이에 황급히 몸을 실었다. 약 50분 뒤 20㎞ 정도 떨어진 신길동 영신고등학교에서 치러지는 한화그룹 계열사의 입사시험을 연달아 보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하필이면 서류 심사에 합격한 두 회사의 필기시험일이 겹쳐 며칠 전 퀵서비스 업체에 오토바이를 예약했다"며 "전속력으로 달려야 시험시간에 맞출 수 있겠다"고 가쁜 숨을 내쉬며 오토바이에 올랐다. 이날 서울 시내 곳곳에선 박씨 같은 취업준비생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반기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주요 기업들의 입사시험이 이날에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으로는 KT를 비롯 SK그룹 및 한화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그룹 차원의 대규모 입사시험을 치렀다. 정유사 가운데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같은 날 시험을 봤다. 금융권의 대표적 공기업인 한국은행 산업은행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등도 모두 이날 공채시험을 실시했다. LG CNS와 넥슨,서울반도체 등의 입사시험일도 이날이었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현대자동차 인턴 채용시험과 취업을 위한 최고 스펙 중 하나로 꼽히는 영어말하기 시험(OPIc · 토익스피킹)도 하필이면 이날 치러졌다.

한 취업준비생은 "오늘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A매치데이'나 '인 · 적성데이'로 불리는 날"이라며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와 복지를 제공하는 대기업들의 공채시험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국제축구연맹(FIFA)이 승인한 각국 국가대표팀 간 축구경기가 한꺼번에 열리는 날(A매치데이)을 빗댄 것이다. 이날 2개 이상 회사에서 서류심사를 통과한 구직자들은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수험장을 이동하는 등 한 곳이라도 시험을 더 보기 위해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일부 고사장에선 취업난을 반영하듯 수능시험날처럼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나온 부모들까지 눈에 띄었다. 딸을 또다른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차에서 기다리던 김모씨(49)는 "아침에 첫 번째 고사장까지 데려다주고 난 뒤 딸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불안한 마음에 다음 시험장까지 가는 길을 미리 답사했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고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오토바이 기사 박모씨는 "수험생을 태우면 보통 8만원 이상 받는다"며 "오늘 같은 날은 1만~2만원의 추가요금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금융회사의 인사담당자는 "취업 희망자들에겐 여러 번의 시험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좋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경쟁사에 우수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험일을 일부러 맞추기도 한다"며 "오늘 입사시험을 치르는 업체들을 보면 이런 이유도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