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잊지못할 그 순간] "10·26사태로 부도…전재산 털어 수출 계약 이행"

이동준 코리아골프&아트빌리지 회장

30대 후반에 1억달러 무역 '기염'
해외도피 유혹 이기고 약속 지켜
中東바이어 신뢰 얻어 거래 지속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을 법한 40여년 전 이야기다. 내가 스물아홉살이었던 1969년.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해이다. 의욕과 젊음,신용만으로 사무실 전세금과 명의 이전을 한 전화기 두 대를 갖고 오퍼상을 시작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무역업에 '겁없이' 뛰어들어 70년대 후반 국가 수출액이 100억달러에 못 미칠 때 1억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릴 만큼 잘 나갔다. 은행에서 쓸 수 있는 여신한도가 200억원이나 됐으니 웬만한 종합상사 부럽지 않았다. 그때 1억달러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30대의 나이에 산업훈장을 세 번이나 받았을 정도다. 지금도 사무실에 걸려 있는 훈장과 표창장을 보며 당시 정말 열심히 뛰었음을 확인하곤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고 했던가. 잘 나가던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급제동이 걸렸다. 1979년 10 · 26 사태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위기가 닥친 것이다. 국가 신용은 땅에 떨어졌고,기업들은 흔들렸다. 나도 혼돈의 시기를 피해가지 못하고 13억원(150만달러)의 부도를 맞았다. 물품을 공급해주던 국내 제조업체들이 도산한 결과였다. 한때 해결방안이 없어 미국 등 해외로 도피할 생각도 했다. 그때 '궁즉통(窮卽通)'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날 길은 있다는 말 아닌가. 더구나 10년 동안 제조업체도 아닌 중소 무역업체를 경영하는 나를 믿고 거래해온 해외 바이어들을 배신한다면 대한민국 사람 모두를 도둑으로 매도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국 그간 열심히 번 전 재산을 털었다. 수출상품을 사들여 계약을 이행했다. 덕택에 지금까지도 매년 1억~2억달러어치의 철강재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당시 중동 지역,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필자는 '꼬리(코리아) 미스터 리'로 통했다. 수출 품목은 철강재,목재,합판 등 건설자재였다. 만일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신뢰를 저버린 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른 일거리를 찾아 그러저럭 밥은 먹고 살았겠지만 떳떳하지 못한 심적인 부담이 두고두고 남았을 것이 분명하다.

어렵사리 위기를 넘기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난관이 다가왔다. 바로 부산 동명목재 사건이었다. 당시 동명목재의 요청으로 원목 350만달러(20억원)어치의 수입을 대행해주었다. 그러나 동명목재가 신군부에 의해 해체되는 바람에 유탄을 맞고 말았다. 수입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못해 '적색 업체'로 지정됐다. 적색 업체란 은행 자금을 대출받은 후 6개월 이상 상환을 연체하면 지정되는 것으로 기업들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금융거래가 일시에 중단되고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필자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도를 넘은 한계 상황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불길같이 일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던 30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젊음' 하나에만 의지한 채 중동 출장길에 오르는 등 사업을 추슬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동명목재 사태로 손해본 20억원은 1년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해체되던 날 항만청이 동명목재 야적장 부지를 컨테이너 부두로 인수하면서 청산이란 절차를 통해 넘겨받았다. 간신히 챙긴 '종잣돈'으로 골프 · 레저 사업에 새로 진출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한국 외에도 일본 미국 중국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수출업과 레저산업을 병행한 지 40년이 지난 지난해 말 국제거래신용대상과 글로벌경영대상을 받는 영예도 뒤따랐다.

최악의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필자를 지켜준 중심은 신뢰와 믿음,젊은 용기였다. 사업인생 40년 동안 서너 차례 찾아온 위기를 버텨낸 저력을 발판삼아 이제 70대 문턱에서 노후의 안정을 바라기보다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마지막 날까지 골프 · 레저에 의료 건강,실버산업을 접목시켜 추진하는 것이 남은 여생의 보람이자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코리아골프&아트빌리지라는 법인을 통해 경기 기흥에서 코리아CC와 골드CC 및 콘도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 고베 인근의 아와지 골프리조트,미국 샌디에이고 인근의 태미큘라 골프리조트,중국 등지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만 108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