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 시대가 온다] (1) "시진핑은 시장주의자"…성장과실 소외계층도 골고루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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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 후진타오'의 리더십
시진핑은 누구인가
지방관리로 통치능력 입증
정치개혁은 신중한 입장
"온화하고 매우 신중한 스타일"
중국의 차기 국가주석으로 떠오른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은 소위 태자당(太子黨 · 공산당 고위 간부 자제들) 출신의 선두주자다. 그의 부친 시중쉰은 선전특구 지정을 덩샤오핑에 건의한 '개혁전도사'로 한때 자오쯔양과 당총서기 자리를 다투던 거물이다. 부친의 성향을 물려받아 그 역시 개방과 성장을 중시하는 시장친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의외로 파란만장하다. 아버지의 실각으로 성장기의 대부분을 농촌에서 고된 노동으로 보냈다. 부친의 복권 후에도 중앙보다는 지방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53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시중쉰은 그가 5살 때 국무원 부총리 겸 비서장에 오른 혁명 1세대다. 어머니 치신은 공산당과 팔로군 여전사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덕분에 그는 고급 간부 자제들만 다니는 베이징81학교에 입학하는 등 유복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9살 때 일어난 '소설 류즈단 사건'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이 소설은 1920년대 공산혁명 전사였던 류즈단이 숙청당한 인물인 가오강을 비롯 시중쉰 등과 함께 혁명운동을 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책이 출판되자 당국은 "소설을 이용해 반당활동을 했다"며 배후 인물로 시중쉰을 지목했다. 그는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고 16년 동안 감시의 대상이 됐다.
시진핑도 베이징에서 쫓겨나 허난성에서 초 · 중등학교를 다녔다. 문화혁명 때는 산시성 옌촨현의 산촌에서 6년간 고된 삶을 살았다. 너무 힘들어 3개월 만에 탈출을 시도하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공산당에 입당했고 1975년에는 칭화대 입학을 허가받아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는 "나의 성장과 진보는 6년간의 농촌생활에서 시작됐다"며 "무엇이 실사구시인지 알게 됐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겅뱌오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의 비서를 맡아 군인으로 중앙무대에 데뷔를 했다. 내빈접대,연설문 작성은 물론 군부대 시찰 등 각종 군사업무를 처리했다. 이런 군 경력 덕분에 인민해방군으로부터도 무난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은 겅뱌오가 좌천되자 지방 공무원 근무를 자원했다. 당시 중앙에서 농촌으로 지원자가 거의 없어 그의 결단은 주목을 받았다. 빈곤지역인 허베이성 정딩현에서 그는 CCTV의 드라마 '홍루몽'의 촬영장소인 룽궈푸를 개발,관광 수입을 크게 늘렸다. 이후 그는 푸젠성 푸저우시 서기,푸젠성장,저장성 서기,상하이 서기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푸저우시 서기 때 시위원회 앞마당에 '마상주반(馬上就辦 · 즉시 처리한다)'이라는 현판을 걸어놓고 대만의 투자를 독려한 것은 유명하다.
시진핑의 정치적 성향은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다. CNN은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시진핑은 시장친화적이지만 정치개혁에는 신중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정치전문가 가오쯔카이는 "사회안정과 공산당 통치를 매우 중시하지만 대중 앞에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진핑은 최근 푸젠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민생개선에 중점을 두고 경제발전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성장의 과실을 소외계층에 골고루 나누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노선과 조화를 이뤄 나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