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카드회사 과당경쟁, '2002년 대란' 악몽 잊었나

신용카드회사들의 과당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카드사들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카드론 확대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마케팅 비용으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2002년 말 겪었던 카드대란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실정이고 보면,이 같은 사태가 재연되지 않도록 감독 당국의 철저한 지도 관리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카드사들의 마케팅 경쟁은 확실히 지나친 면이 있다. 현대카드와 삼성카드는 2위 다툼에,KB카드는 분사를 앞두고 몸집 불리기에 몰두해 있다. 신설사인 하나SK카드는 규모의 경제를 위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다른 카드사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카드사의 경우 12개월 무이자 공세를 펼치고 있을 정도다. 이로 인해 지난 상반기 카드사 전체의 마케팅 비용은 1조3616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30%나 증가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카드사의 주력 업무인 신용판매분야에선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따라 카드사들은 금리가 높은 카드 대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지난 8월 말 현재 카드론 잔액은 14조584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23% 증가했다. 은행보다 대출받기가 쉽고 저축은행보다 금리가 낮은 카드대출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당장은 달콤하지만 금리가 오름세를 타거나 경기가 침체되면 갚을 길이 막막해진다. 이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가계부채 상환 부담을 가중시켜 소비자와 카드사 모두의 부실을 초래할 게 뻔하다.

물론 지금 상황을 카드대란 당시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카드사의 영업이익이 2조3095억원에 달할 정도로 수익이 개선됐고 연체율도 비교적 안정된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는 등 카드사들의 재무상태는 당시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쉽게 진정되지 않는 게 카드사 영업경쟁의 속성이다.

금융감독원이 카드사들에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라고 요구했다지만 구두 경고로 그칠 일이 아니다. 현장에 직접 나가 비정상적인 영업 관행을 적발하고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부실 위험에 대비토록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사태가 악화된 후에는 바로잡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