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꼬여만 가는 낙지 파동

"아~따.함 생각히(해)보소.그렁께 요(이)것이 어민들을 두번 시번(세번) 죽이는 일 아니고 뭐겄소.안 그러요. "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 사는 낙지잡이 어민 백광석씨(46)는 서울시가 20일 머리를 뗀 낙지를 구내식당에서 점심요리로 제공했다는 소식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서울시는 이날을 '낙지 데이(day)'로 정해 점심 때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에게 '낙지 생야채 비빔밥'을 제공했다. 요리에 쓰인 2700여마리의 낙지는 중금속(카드뮴) 오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머리가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백씨는 "서울시가 자기들의 주장대로 낙지머리가 중금속(카드뮴)에 오염돼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꼴이 됐다"고 분개했다.

서울시의 카드뮴 검출 발표로 촉발된 낙지파동이 수그러들기는커녕 파장이 되레 번지고 있다. 이번 파동은 검찰이 "서울시가 시료로 사용한 낙지가 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이라고 지난 19일 발표하면서 수습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낙지 소비촉진을 위해 마련한 이날 행사는 역(逆)효과만 내고 말았다. 서울시는 "낙지를 먹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겠지만 '낙지 먹물과 내장만 빼면'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인 게 문제였다. 어민들로서는 서울시가 종전 주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9~12월이 성수기인 낙지값은 카드뮴 낙지 발표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세발낙지의 경우 한 접(20마리) 당 가격이 3만원대로 작년보다 2만원이나 떨어졌다. 그나마 찾는 사람이 없어 도매상이나 식당의 수조 안에서 자연폐사하는 낙지가 속출했다.

양태성 신안갯벌낙지 영어조합법인 대표(44)는 "서울시가 '낙지 데이'에 쓰겠다며 1000만원어치를 주문했지만 낙지머리를 제거한다는 말에 거절하고 행사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는데도 행사를 강행했다"며 "소비촉진이 아니라 사실상의 불매운동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남 신안 · 무안 등지의 어민들은 오는 25일 서울시청에서 어민궐기대회를 여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낙지 파동이 끓는 물에 들어간 낙지처럼 갈수록 꼬여만 가고 있다.

최성국 광주/사회부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