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부산 파생상품 허브'] 0.007초 늦어 부산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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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장치 서울에만 설치…부산서 주문 땐 체결속도 떨어져파생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부산시와 한국거래소가 주문 접속장치(라우터)를 놓고 벌이는 논쟁의 핵심은 체결 속도다. 부산시는 파생거래 주문을 받는 라우터가 서울에만 있어 증권 · 선물회사를 유치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파생거래 전산시스템은 거래소 부산 본사에 있지만,접속하려면 라우터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에도 장치 설치하면 서울보다 더 빨라져 '딜레마'
◆선물회사 대부분 서울 이전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이 거래소에서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부산에서 주문을 내면 서울 라우터를 거치는 과정에서 체결 속도가 0.007초(7ms) 지연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민우 부산시 금융중심지기획단 금융산업팀장은 "지난해 금융위원회로부터 파생금융에 특화한 국제금융 중심지로 지정받았지만 여건은 오히려 악화됐다"며 "거래소 통합 이후 부산에 있던 선물회사들이 서울로 옮겨 시장 플레이어들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에 선물거래소가 있던 2003년 당시 삼성 외환 우리 유진 등 8개 선물회사가 부산에 본 · 지점을 뒀다. 하지만 2005년 통합거래소가 출범한 뒤 부은선물(현 BS투자증권)만 남고 모두 서울로 옮겼다. BS증권도 전산시스템과 영업조직 일부를 서울로 옮긴 상태다. BS증권 관계자는 "외국 기관들은 여러 회사에 주문을 나눠 내 체결 속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금방 안다"며 "주문 속도는 서울이 훨씬 유리해 고속 알고리즘 거래도 부산에선 거의 어렵다"고 설명했다.
◆핵심 쟁점은 체결 속도차거래소는 부산에 선물거래소가 있었던 점을 감안해 파생거래 메인시스템은 부산에,현물거래 시스템은 서울에 뒀다. 하지만 접속장치는 회원사가 몰려 있는 서울에 두기로 2006년 최고정보책임자(CIO)협의회 등을 거쳐 결정했다. 거래소 측은 라우터를 부산에 추가 설치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부산에서 주문을 내도 서울 회원사의 통합계좌에서 주문정보(고객원장)를 확인해야 하므로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한다. 회원사가 부산에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매년 4억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부산에 라우터가 있으면 파생거래시스템으로 직접 접속하기 때문에 부산에서 낸 주문이 서울보다 빨라진다. A증권사 관계자는 "서울에서 현물거래시스템을 통하는 주식워런트증권(ELW)과 부산 파생시스템을 거치는 옵션주문을 동시에 낼 때 ELW 체결이 0.005초 정도 빠르다"며 "부산에 라우터가 생기면 반대로 부산이 더 빨라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논쟁을 보는 업계 시선은 싸늘하다. 서울에 전산시스템을 둔 상황에서 부산에도 라우터가 생기면 중복 투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파생은 은행 증권 보험을 아우르는 시장인데 거래소 본사만 내려보내면 된다는 식의 정치적 해법이 늘 문제였다"며 "이번에도 힘겨루기식으로 접근하면 시장을 왜곡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네트워크 광역화로 해결
해외 거래소들은 전산시스템 강화와 네트워크 광역화로 속도차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는 세계 6개 통신허브를 통해 80개여국이 접근해 파생거래를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거래소는 과거 각 거래소 소재지에서 접근하는 시스템을 전국 네트워크로 전환해 국내외 기관들의 직접 거래를 중개한다.
B증권사 관계자는 "해외 거래소들은 증권사가 거래소에 직접 서버를 둘 수 있게 하는 등 회원사들의 속도 갈증을 적극적으로 풀어준다"며 "국내에선 아직 알고리즘 매매에 대한 거부감으로 속도보다는 형평성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