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중 쇠파이프 맞아 쓰러져도…만족할 때까지 찍고 또 찍죠"

시청률 30% 육박 '자이언트' 주연 이범수
이범수(40)는 팬들 사이에 '대인배'로 통한다. '대인배 김슨생'(김연아 선수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에 상당하는 좋은 평가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도 싱크로율(부합률)이 높은 데서 붙여졌다. '강심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는 방송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2007) '온에어'(2008)에 이어 현재 방영 중인 SBS '자이언트'까지 3연속 시청률 30%대를 질주하고 있다. 이범수는 여기서 온갖 역경을 딛고 1980년대 강남 땅 개발에 성공하는 사업가로 등장해 팬들의 갈채를 받고 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소속사 마스크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가는 곳마다 '재미있다'고 야단이에요. 식당이나 엘리베이터 안,길거리에서 만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빨리 조필연(정보석이 맡은 나쁜 정치인)을 없애 달라고 해요. 정연(박진희)이 조폭들에게 납치됐을 땐 우리 엄마가 힘들어하니까 빨리 구해달라는 시청자도 있더군요. "

이 모든 이야기는 강남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다. 강남개발사는 모두 아는 듯하지만 실은 누구도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그는 얘기한다. 극중 간간이 등장한 10 · 26과 광주민주화운동,삼청교육대 등 굴곡의 현대사들도 시청률 상승에 한몫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젊은 날을 회상하고 신세대들은 몰랐던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고.

"장영철 정경순 작가의 대본이 탄탄해요. 현대사와 맞물린 인물들의 갈등도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고요. 가령 원수가 사돈지간입니다. 또 사랑하는 여인이 아버지 원수의 딸이면서 자기에겐 은인의 딸이죠.우리네 일상에서도 흔히 부닥칠 수 있는 일이죠.정치인이 악인이고 사채업자가 선인(善人)으로 나오는 등 캐릭터에 대한 기존 관념도 뒤집습니다. 반면 나쁜 사채업자와 좋은 정치인도 함께 등장시켜 균형도 살리고요. "이범수가 맡은 이강모는 이들 틈새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승부수를 던진다.

"이강모란 인물은 한마디로 '행동하는 선' '힘 있는 선'의 화신입니다. 힘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선만이 악을 이길 것으로 상정했지요. 강모는 복수심에 불타지만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지녔어요. 삼남매가 다시 합쳤을 때에는 천진난만할 정도지요. 하지만 이런 여러 성향이 따로 노는 것처럼 비쳐지면 안 되죠.그래서 집중력 있는 연기를 펼치려고 노력합니다. "

강모는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면모도 지녔다. 그래서 납치된 정연을 구하기 위해 혼자 적진에 들어가 집단 구타를 당한다. 이런 액션 신은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액션 신도 현장에서 바로 무술 연습을 한 뒤 촬영했어요. 액션 신에서는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대사 NG와는 다르죠.굉장히 집중을 요구하는 신이었는데 무리없이 촬영했어요. 촬영 중 쇠파이프에 진짜 맞아 쓰러지기도 했지만요. 저는 흡족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는 편입니다. 제 자신과 가능한 한 타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작품을 선택할 때 그는 자기 취향보다는 시청자를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당시 한동안 의학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에 출연했다. '온에어'는 방송가에서 벌어지는 배우와 매니저 작가 등의 뒷얘기가 일반인의 관심을 끌 것으로 봤다. 물론 개인적으로 구미가 당기면 뛰어들기도 한다. 지난해 주 ·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4편을 선보인 게 그렇다. '킹콩을 들다'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슬픔보다 더 슬픈' '홍길동의 후예' '정승필 실종사건'은 실패했다.

"저에게 연기란 즐거움이자 취미예요.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노동'일 겁니다. 호기심이 넘치니까 많은 작품에 출연하게 되나 봅니다. "지난 5월 통역사와 재혼한 그에게 바쁜 일과 중 맛보는 신혼 재미는 어떤지 물었다.

"1년 전 그녀(지금의 아내)가 5월의 신부가 되고 싶다고 해서 지난 5월 결혼했습니다. 올해 5월에는 정신이 없을 것이라고 해도 괜찮다고 해서 식을 올렸죠.요즘은 집에 늦게 돌아와도 아내와 한두 시간씩 꼭 함께 놉니다. 화분 위치를 옮기고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요. 이런 일이 기뻐요.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신혼 재미는 '양보다 질'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