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tory] 한샘‥5년 앞을 내다보는 디자인…재구매 고객 매출만 한달 100억

hurrah! 히든 챔피언
경영포인트
① 고객을 감동시키는 굿디자인 개발
② 선택의 폭을 넓힌 다양한 제품 생산
③ 온ㆍ오프라인 결합시킨 인테리어 유통 혁신

비원의 가을은 고즈넉하다. 아름드리 나무가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이따금 새소리가 들린다. 서울 원서동 한샘의 디자인연구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다. 비원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5층짜리 이 연구소 지붕엔 기와가 얹혀져 있고 처마엔 풍경이 달려있다. 이따금 바람결에 풍경소리가 울려퍼진다. 복도와 계단은 한옥 마루이고 문은 전통 문양이다. 베란다엔 잔디가 심어져 있고 3면이 훤히 트여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예술의전당을 디자인한 건축가 김석철씨가 설계한 이곳은 한샘의 경쟁력이 솟아나는 샘이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한샘DBEW(Design Beyond East & West)디자인센터'다. 그러나 본사 직원조차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한샘의 비밀정원인 셈이다. 전체 디자이너 90명 중 불과 15명만이 이곳에서 일한다. 나머지 디자이너들은 서울 방배동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한다. 그러면 이곳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이 연구소에선 한샘의 최고급 부엌가구인 키친바흐가 디자인된다. 5년 뒤를 내다보는 디자인 작품도 만들어진다. 국내외 간판급 디자이너와의 협업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세계적 리빙디자이너인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지오바노니,알렉산드로 멘디니와의 협업 역시 이 연구소에서 진행됐다. 이름에서 풍기듯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디자인센터다. 한샘은 디자인으로 승부를 거는 기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곳은 한샘의 미래를 좌우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한샘은 국내 최대 부엌가구업체이자 인테리어 유통업체다. 그러나 시작은 초라했다. 1970년 서울 불광천 부근 작은 천막속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직원이래야 대여섯 명.이곳에서 부엌가구를 처음 만들었다. 당시엔 부엌가구라는 말조차 생소한 시기였다. 창업자는 서울대 건축공학과 출신의 조창걸 명예회장(71)이다. 그 뒤 안양의 콘센트 막사를 거쳐 지금은 시화공단에 본사를,서울 방배동에 서울사무소 및 대형 쇼룸을 갖춘 국내 최대 인테리어 유통업체로 발돋움했다.

창업한 지 올해로 40년.그동안 많은 기록을 남겼다. 1986년 이후 현재까지 24년 동안 부엌가구 시장점유율 1위,2001년 이후부터 인테리어 가구 시장점유율 1위 등이다. 작년 매출은 5471억원,올해 목표는 6000억원에 이른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질주하던 대표적인 가구업체들의 상당수가 무너진 가운데 중소 부엌가구업체로 출발한 한샘은 이제 국내를 대표하는 종합가구이자 토털 인테리어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취급 제품은 부엌가구,학생가구,서재용 가구,소파,침대,각종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하다. 남들은 고전하는데 이 회사는 어째서 승승장구하는 것일까.

최양하 한샘 회장(61)은 "아름다운 디자인과 다양한 제품,그리고 끊임없이 혁신해온 인테리어 유통 노하우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최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중공업을 거쳐 1979년 한샘에 입사해 31년째 일하고 있다. 1994년부터 무려 16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한샘 성장의 첫째 비결은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최 회장은 "디자인은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아름다운 디자인을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디자인관을 갖고 있다. 1970~80년대만 해도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도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1990년에 디자인연구소를 세웠다. 한때 전 직원의 10%를 디자이너로 뽑을 정도로 디자인에 투자했다. 지금도 전체 디자이너가 90여명에 이른다. 전체 직원 1200명의 약 8%에 달하는 숫자다. 게다가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공동작업도 하고 있다. 이같이 "디자인에 매료돼 재구매하거나 주변에 추천해서 생기는 매출이 월 100억원이 넘는다"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디자인의 힘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둘째,어떤 사람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군이다. 최 회장은 "한샘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은 부엌이 가정의 중심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부엌을 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실용적인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제품이 필요했다. 예컨대 키친바흐 등은 이탈리아나 독일의 최고급 수입품에 대항하기 위한 비싼 제품이라면 일반 제품 중에선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들도 있다. 인테리어 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디자이너가 많아 경쟁사들보다 2배가량 많은 연간 20여개 모델을 개발해온 것도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셋째,인테리어 종합 유통의 도입이다. 대표적인 게 '아이키친' 유통이다. 가구만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도입한 게 아이키친 유통이다. 인테리어업체를 겨냥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은 소비자가 인테리어 제품을 직접 고른다. 하지만 한국은 인테리어업체에 맡긴다. 전국에 약 2만5000개의 인테리어업체가 있다. 이 중 선두업체 3000개가 시장을 좌우한다고 보고 이들과 제휴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이를 위해 부엌가구 욕실 바닥재 벽지 도어 창호 조명 등을 출시했거나 앞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선진국형 토털 홈인테리어 전문매장과 온라인유통 사업도 벌이고 있다. 토털매장은 홈인테리어에 관한 모든 제품을 한 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이미 논현,방배,분당 세 곳에 각각 5000㎡ 규모의 직영매장을 열었고 작년 10월엔 6000㎡ 규모의 잠실직매장을 개설했다. 잠실직매장은 개관 이후 1년동안 15만명이 찾아 3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내년 하반기에는 부산 센텀시티점을 여는 등 점차 전국으로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온라인 가구시장 공략을 위해 한샘의 사이트(WWW.HANSSEM.COM)를 인테리어 전문 포털사이트로 개편했다. 최 회장은 "국내 온라인 가구시장 규모는 6000억원대에 이른다"며 "지난해 온라인을 통해 28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이 매출이 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샘은 온라인 매출을 전체 매출의 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의 미래 비전은 글로벌시장에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 한샘의 해외진출 역사는 짧지 않다. 미국 현지법인을 1986년 설립해 동부에 2개 공장과 2개 쇼룸을 갖추고 부엌가구를 팔고 있다. 매년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최 회장은 "미국 고객은 한국동포가 아닌,현지 미국인이 대부분이며 중상위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선 최근까지 어려움을 겪었으나 내년부터는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그동안 주로 프로젝트 영업을 해왔으나 앞으로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다. 아이키친 유통과 선진국형 인테리어 직매장 및 온라인유통 사업이 그들이다. 이를 통해 동북아 최고의 홈인테리어 유통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은 "한샘의 모델은 이케아와 홈디포를 합친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이케아는 가구 디자인과 제품개발 조달 물류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의 홈디포는 건자재분야의 강자다. 이 둘을 아우르는 비즈니스모델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그 바탕엔 오랜 경험과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발전해온 한샘이 해외에서도 샘솟는 아이디어로 지속성장을 이어갈지 관심을 모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