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대물 신드롬'에 빠진 여의도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 드라마 '대물' 때문에 여의도 정치권이 울고 웃고 있다. 여야 정당과 의원회관 주변에선 '이 배역은 누구를 모델로 했다'거나 '이 장면은 누구를 비꼬는 것이다' 등 드라마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배역에 해당하는 당사자들은 드라마의 캐릭터가 본인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24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 직후 가진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두 회를 빼고 거의 다 봤다"며 "그런데 집권당 대표인 조배호(박근형 분)가 너무 부패하게 나와 국민들이 오해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성정치인이 대통령이 된다는 극중 설정 때문인지 여권 내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 인사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극중에서 서혜림(고현정 분)이 총선에 출마하면서 신뢰를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정도를 걸어가려고 하는 모습은 드라마 작가가 우리 선거 전략을 차용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의원도 "여자 대통령이라는 설정을 박 전 대표와 직결시키는 것은 지나치지만,이 드라마를 통해 막연히 '여자대통령이 가능하겠어'라는 생각을 가진 많은 국민들의 선입견이 조금은 희석되지 않을까"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제비족'에서 열혈검사로 변신하는 하도야(권상우 분) 검사역에는 법조 출신 의원들의 관심이 크다. 최근 기자에게는 법조출신 의원실을 중심으로 하 검사가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를 문의하는 연락이 자주 오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의 관심은 이 드라마가 차기 대권가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04년에 방영된 드라마 '영웅시대'가 당시 차기 대권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인지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정치인이 국민의 마음을 얻어가는 과정',곧 정치인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사로잡히지 않는 '큰 정치'가 이 드라마의 메시지인데도 말이다.

구동회 정치부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