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물가연동국채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인플레 기대심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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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 추가 양적완화 앞두고 발행액 2.8배 넘는 자금 몰려미국 통화당국의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앞두고 물가 상승 기대심리가 확산되면서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물가연동국채(TIPS)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말 3개월 만기 미 국채 유통수익률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은 있지만 발행 시장에서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25일 미 채권업계에 따르면 재무부가 이날 실시한 100억달러 규모 5년 만기 TIPS 경매에서 수익률이 -0.55%로 낙찰됐다. 5년 만기 일반 미 국채 수익률이 1.18%인 점에 비춰볼 때 이론적으로 향후 5년 동안 매년 물가(소비자물가지수 기준)가 1.73%씩 올라야 만기 때 최소한 일반 국채에 투자한 것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다. TIPS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입찰 경쟁이 치열했던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양적완화 조치로 시중에 유동성을 풀면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결과다. 명목금리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 기대가 커질수록 TIPS는 매력적인 투자수단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날 입찰에는 입찰 대상 원금의 2.84배나 되는 돈이 몰렸다. 외국 중앙은행을 포함한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간접투자 규모가 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추가 국채 매입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기려는 FRB의 정책이 벌써부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 통화당국은 지난달 금리결정회의에서 물가상승률이 바람직한 수준을 훨씬 밑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물가상승률이 지나치게 낮아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우려가 커지면 제품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를 늦추면서 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TIPS에 자금이 몰린 것은 단기적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가라앉고 대신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에 주목하는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 있는 채권투자사 핌코의 토니 크레센지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마이너스 낙찰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만기에는 수익을 거둘 것이란 판단에 따라 투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TIPS는 물가와 연동해 물가가 오르면 채권의 원금도 따라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 국채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TIPS와 국채에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FRB의 양적완화 조치가 효과를 거둘 것이란 시장의 강한 믿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크리스티안 쿠퍼 제프리스앤드코 선임 트레이더는 "미 국채도 매도물량이 나올 때마다 이를 무난히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꾸준히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양적완화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국채 매입 규모가 4조달러는 돼야 한다는 전망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양적완화 조치 기대감으로 미 국채 금리가 떨어지면서 달러화는 약세를 이어갔다. 또 다른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금값은 상승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물가연동국채(TIPS)
Treasury Inflation Protected Securities.미국 연방정부가 물가 상승에 따른 국채 투자자들의 피해를 보전해주기 위해 1997년 도입했다. 일반 국채와 마찬가지로 표면금리가 있고 입찰을 통해 발행수익률이 결정된다. 다만 물가와 연동해 물가가 오르면 채권의 원금이 늘어나는 게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