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민 책임의식' 절실한 복지개혁

'세대간 전쟁' 비화된 佛 연금 개정
한국도 과도한 사회보장 자제하길
프랑스에서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파업이 근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파리 등 주요 도시들에서 과격시위 때마다 여기저기 불길이 일어나고 있는데,마치 2차대전 이후 민주주의의 신념 위에 쌓아온 사회복지제도가 불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불은 아직 꺼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복지개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인내해 왔던 다른 선진국들은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프랑스의 근로자들은 연금 지급을 2년 늦추는 대신 2년간 정년을 연장하려는 정부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재정이 파탄났는데도 한 푼의 연금도 손해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일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을 비롯한 청년들은 정년 연장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라고 반대한다. 특이한 것은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과 시민이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책임은 유권자들의 눈치만 보고 사회와 경제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정치권에 있다. 프랑스에서의 연금 개혁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라크 대통령 시절인 1995년에도 연금 개혁이 시도됐다. 그러나 지금 같은 소요사태로 결국 실행하지 못했고 정권까지 바뀌었다. 정치권의 잘못된 판단이 결국 복지제도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를 포함해 선진 각국에서 국민연금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라는 정치적 명분 아래 높은 연금급여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국민연금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서 연금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사회적 연대를 깨고 '세대 간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지켜 온 사회적 약속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의 원인은 프랑스 경제가 정체되면서 막대한 재정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재정적자는 그 나라의 경제를 침체시킬 뿐 아니라 언제든지 세계 경제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나라는 자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위해서도 재정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재정안정을 위해서는 과도한 분배적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이 중에서도 특히 재정적자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시 남의 집 불구경만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부담에 비해 급여가 높은 적자재정 구조를 가지고 있고,2040년대부터는 당기적자가 발생해 2060년대에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전망이다. 더욱이 세금으로 조달되는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올해 1조3000억원가량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최근 도입된 장기노인요양보험은 정부부담으로 작년에 8600억원(의료급여수급자 지원금 포함)이 들어갔고 고령화에 따라 앞으로 얼마나 증가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기초연금의 확대나 국민건강보험의 완전한 의료보장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자치단체장들이 학교 무상급식을 전면 확대하려 하고 있다. 또 남북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에 대해서도 남한 주민과 똑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부담을 국민들이 짊어지게 됨은 물론이다.

이제 더 이상 무절제한 사회보장 요구는 자제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경제적 책임이 없이는 사회보장은 불가능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책임의식)'뿐 아니라 '시민의 책임의식'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회는 그동안 미룬 국민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고 국민건강보험도 장기노인요양보험과 함께 새 틀을 짜야 한다. 지금 복지개혁을 하지 않으면 10년 후 또는 20년 후 우리는 프랑스보다 더 크게 당할 수 있다.

김원식 < 건국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