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성균관 스캔들

"넌 곧 죽어도 지키고 싶은 그 대단한 자존심이 왜 나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믿는 거지.그러니까 날 동정한 건가. 너한테 난 힘 없고 가난해서 늘 불쌍한 인간이었군.그래서 누구든지 손만 내밀면 덥석,감지덕지 받는 게 당연한."

"굴레를 씌운 건 고약한 세상이지만 그걸 벗는 건 김윤식 니 몫이야.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과녁 앞에 서게 마련이다. 활을 다 쏠 때까진 누구도 그 앞을 벗어날 수 없어." 앞의 것은 돈도 빽도 없는 김윤식이 당대의 엄친아 이선준에게,뒤는 선준이 윤식에게 하는 대사다. KBS 2TV 월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극본 김태희,연출 김원석 · 황인혁)이 화제다. 시청률은 높지 않지만'성스폐인'이란 마니아들을 만들어내면서 원작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2'(정은궐)가 예스24 · 알라딘 · 인터파크 · 교보문고 등 온 · 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1~5위)에 오르고 있을 정도다.

극은 조선조 정조대왕 시절 몰락한 남인 집안의 딸 김윤희가 남자(윤식)로 위장,금녀구역인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중심 인물은 윤식과 원칙주의자 선준,반항아 문재신,아웃사이더 구용하 4인방과 이들을 괴롭히는 유생 대표(장의) 하인수네 일당.

성균관 유생들의 일상을 그린 청춘사극이란 간판과 달리 드라마는 출신과 배경이 다른 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의 바탕은 무엇인지 묻는다. 여자임을 들킨 윤식이 스승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꿀 기회를 허락해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공정한 기회에 대한 일반의 열망을 대변한다. 대리시험 관행에 대한 선준의 지적은 단순한 옛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글을 파는 일이 수치인지도 모른 채 돈벌이에만 급급한 이들이 첫째요,제 답지를 작성하는 일에만 골몰해 부정을 보고도 개의치 않는 과유들이 둘째,그리고 이를 그저 관행이라 여기는 모든 관원들,또한 이 모두를 주관하시는 대사성 영감의 죄 또한 결코 가볍다 할 수는 없겠지요. "

우는 것과 거짓말,도망치는 것 모두 자꾸 하면 습관 되고 버릇 들면 고치기 힘드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재신의 말 또한 가슴을 파고든다. 또 하나,이 극엔 은근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있다. 꽃미남,남장여인,동성애,추리적 요소 등 흔하디 흔한 기법을 몽땅 차용하고도 상투성을 면한 이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