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유전자원도 희토류처럼 무기화 가능"

'나고야 의정서' 18년 만에 채택

식·의약품 업계 로열티 부담 커져
한국, 반출관리 생물 1100종 불과…각국 700조 '그린골드' 선점 경쟁

우리나라의 자생나무인 수수꽃다리는 미국의 한 식물채집가가 1947년 북한산에서 캐내 가 미국에서 상품화한 품종이다. 라일락의 일종인 이 나무는 미국 내 라일락 시장의 30%를 장악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 나무는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역수입되고 있다. 한라산과 지리산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도 유럽으로 반출돼 크리스마스 트리로 각광받고 있고 네덜란드로 반출된 나리류는 25종의 신품종 특허권을 획득해 우리나라로 매년 400만달러어치가 수출되고 있다.

생물 유전자원 주권전쟁이 시작됐다. 유전자 주권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이용해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반면 제대로 보호하고 연구 개발하면 무궁무진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700조원 규모의 '그린골드(green gold)'시장이 열린 셈이다. 이는 지난달 29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0)에서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공유(ABS)' 의정서가 18년 만에 전격 합의된 데 따른 것이다. ◆막 오른 유전자원 전쟁

나고야 의정서는 내년 2월부터 1년 동안 각국의 서명을 받아 50개국 비준 후 90일째 되는 날에 발효될 예정이다. 발효 후에는 의약품,식품,화장품 등 생물자원을 제조 · 판매하는 기업이나 관련 연구기관들은 자원보유 국가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로열티도 지불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각 나라의 동 · 식물 등 생물유전자원이 석유나 중국의 희귀금속인 '희토류'처럼 자원 무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은 돼 있지 않은 상태다. 유전자원 관련 연구 및 개발은 성과물을 얻을 확률도 낮고 장기간 동안 높은 비용을 투입해야 해 정부와 기업의 외면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환경부가 157개 기업과 연구기관 50개소 설문조사 결과 기업의 94.1%,연구기관의 64.4%가 국제동향을 모르거나 잘 알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문수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총괄과장은 "ABS에 따른 해외유전자원 접근 규제 및 의무적 이익공유 요구 등은 생명공학기술산업 및 관련 연구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ABS에 대한 이해 부족은 향후 이익공유 소송 또는 특허취소 소송 등 예기치 못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소는 최근 아열대 식물인 심황(Turmeric)에서 상처치료제를 만들어내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인도에서 100여년 전 지역 방언으로 쓰인 저작물 등을 제시하며 심황이 전통적인 상처치료용으로 사용돼 왔다고 주장이 나와 특허가 취소됐다.

ABS는 각 국가의 생물자원 주권을 인정하는 실질적인 수단이지만 자국의 생물 현황을 알지 못하면 주권도 주장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은 타미플루 추출식물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미국 길리어드사는 중국 토착식물인 스타아니스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타미플루를 개발한 후 한 해 5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국내 자생생물 30%만 파악세계 여러 국가들은 발빠르게 자생생물 파악 및 보호에 나섰다. 김찬우 환경부 국제협력관은 "현재 볼리비아,브라질,중국,콜롬비아 등 생물다양성 부국 17개국은 공동대응 단체를 만들어 유전자원 주권을 확대하고 있다"며 "앞으로 각 국은 생물자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희토류처럼 무기화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에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또 10만종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자생생물 중 3만종 정도만 확인된 상태다. 게다가 이들 중 정부 승인 없이 반출이 금지된 '국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은 1100여종에 불과하다. 유전자원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2007년 문을 연 국립생물자원관이 보유한 생물표본도 180만점에 불과하다. 영국의 큐식물원(500만점)과 미국의 미저리 식물원(800만점),일본 도쿄대 박물관(300만점)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권오석 경북대 교수(농업생명과학)는 "우리나라는 생물자원 빈국으로 향후 자원 이용에 따른 비용의 지출이 수입보다 많을 것"이라며 "우리 생물종을 발굴해 생물자원 국제 교류에 이용하고 정부,기업,학계가 함께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