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배구조 이것이 문제다] (2) CEO 입김대로 선임ㆍ해임…사외이사 독립성 취약

(2)제 역할 못하는 사외이사
책임감ㆍ전문성 확보 어렵고 경영진 견제 역할 힘들어 감사위원회 독립 등 시급

"이사회에서는 진위를 판단할 입장이 아니고,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법당국의 결정을 보고 나서 그때 결정하는 게 맞다. "

전성빈 신한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지난달 14일 이사회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에 대해 배임 및 횡령 의혹으로 직무정지결정을 내리고 나서다. 이사회의 결정은 금융권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한쪽에서는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했다고 비판했다. 다른 쪽에서는 이사회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옹호했다.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이사회가 중심을 못 잡으면서 내분사태가 장기화되자 사외이사 역할에 대한 회의론도 커졌다. ◆사외이사는 항상 경영진 편?

신한금융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는 8명이다. 4명은 재일교포 주주들을 대표하고 1명은 주요 주주인 BNP파리바를 대표한다. 나머지 3명은 사실상 경영진의 추천으로 선임됐다. 재일교포 주주들이 지분을 17%만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의 절반을 차지한 것도 경영진의 '배려' 때문이란 게 내부의 분석이다.

사내이사 4명 중 눈에 띄는 사람은 류시열 대표이사 직무대행(회장)이다. 그는 2005년부터 5년 동안 사외이사로 재임했다. '사외이사는 연속해 5년을 초과해 재임할 수 없다'고 규정된 사외이사 모범 규준에 따라 그는 사외이사를 더 이상 못하게 됐다. 신한금융은 류 회장을 '비상근 사내이사'라는 자리를 만들어 이사회에 참여시켰다. 금융권에선 유일한 자리다. 물론 사외이사 추천권은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선임권은 주주총회에 있다. 하지만 사외이사추천위원회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게 경험자들의 얘기다. 경영진이 추천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된다. 정치적 '줄'을 타고 들어오는 사외이사도 상당수다. 태생적으로 사외이사들이 최고경영자(CEO)나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한금융의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는 놀고 있느냐'는 책임론이 불거지자 "언제부터 사외이사들에게 제대로 역할하도록 해 준 적이나 있느냐"고 하소연했다.

◆전문성 책임성도 문제

신한금융 사외이사의 임기는 1년이다. 사외이사 모범규준에는 임기를 '2년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사외이사 임기를 1년에서 2년으로 바꿨다. 하나금융도 이사별로 1~3년인 임기를 2년으로 통일했다. 사외이사의 영향력이 강했던 KB금융은 사외이사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였다. 신한금융처럼 사외이사 임기를 1년으로 해놓고는 전문성도 책임감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감사위원회는 상근감사를 대체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나 이사회 내 핵심기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상적인 감사 업무는 상근 감사가 하고 상근 감사는 감사위원회에 참여한다. 감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사후 감시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런 사후 감시기능 약화는 이사회의 권한과 위상을 위축시키고 전체 사외이사의 책임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행임원들은 이사회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 등 사내 등기이사 이상의 업무를 수행하는 집행임원들은 CEO가 선임한다. 집행임원들은 이사회에 대한 보고의무도 없다. CRO가 CEO의 경영전략이 리스크관리상 위험하다고 생각해도 반대하기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감사위원회를 독립시키고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만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언제까지 사외이사의 양식에만 맡겨 두는 건 한계에 이르렀다"며 "사외이사의 경영진 감시구조를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