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부가 복권도 모자라 도박장까지…경제적 풍요가 最高善이 돼버린 세상"

복권을 사라고 부추기는 정부…구매자는 대부분 노동자·빈민
非도덕 묵인케 하는 경제논리…지금 시급한 건 도덕성 회복

왜 도덕인가 | 마이클 샌델 지음 |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352쪽 | 1만6000원
# 과거 미국의 모든 주에서 불법이었던 복권사업은 언젠가부터 주 정부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잡았다. 1970년에는 2개 주에서만 복권사업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40개주에서 운영하고 있다. 2004년 미국의 복권판매액은 480억달러를 넘었다. 1985년에 비하면 5배나 늘어난 수치다.

전통적으로 복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박이 부도덕한 행위라는 점을 지적하지만 복권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은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중요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정부 수입을 늘릴 수 있고,세금과 달리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므로 복권사업은 비도덕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복권을 적극 홍보하고 그것을 사도록 부추긴다. 그 대상은 주로 노동자 계층,소수민족,빈민층이다. 이들에게 복권광고는 엄청난 대박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므로 뼈빠지게 일할 필요가 없다는 환상을 자극한다. 그런데도 복권사업은 부도덕하지 않을까. # 1990년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품들이 경매에 나왔다. 케네디가 앉았던 흔들의자는 30만달러,그가 암살된 댈러스에 갈 때 들었던 검정색 악어가죽 가방은 70만달러,속옷은 3000달러에 팔렸다. 그러나 케네디의 자녀들은 소유권을 주장하며 경매에 반대하려 했다. 케네디의 유품은 유족과 역사,미국 국민들의 것이며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역사적 유물이 사유화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마틴 루터 킹 목사,비틀스의 존 레넌 등 유명인사와 관련된 경매는 꼬리를 무는 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여러 면에서 잘못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전쟁은 끔찍한 잘못이다. 그렇다면 핵전쟁이 여타의 전쟁과 특히 다르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파괴 도구와 달리 핵전쟁은 인간의 멸종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인류의 삶을 종말에 이르게 하는 것 사이의 도덕적 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왜 도덕인가》는 지난 5월 말 국내에 번역 · 출간된 이후 50만부 이상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보다 근본적인 가치인 도덕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책이다. 2005년 초판을 낸 후 2007년 스승인 존 롤스를 추억하는 글을 보태 개정판을 냈다. 한국어판에는 '가디언'지에 기고했던 '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하여' 등의 글을 추가했다. 저자는 민주사회에서 도덕성의 의미와 본질,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다루면서 공공생활을 움직이는 도덕적 · 정치적 딜레마를 탐구한다. 그는 지난 20년간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던 도덕적 현안들을 경제 · 사회 · 교육 · 종교 · 정치 등 5개 주제로 나눠 꼼꼼히 살펴보고 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해 도덕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도덕적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복권과 도박에 대해서는 공공서비스인가,매춘처럼 비도덕적 사업인가. 이익에만 눈이 먼 구단주들이 쥐락펴락하는 스포츠구단은 진정 누구의 것인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는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소재를 돌리고 인류공동의 협력을 약화시킨 것은 아닌가. 소수집단 우대정책이 역차별은 아닌가. 공교육을 후퇴시키는 시장논리,존엄사,배아복제,낙태와 동성애 등 종교적 논쟁거리와 정치인의 거짓말 ,거대 기업과 거대 정부의 관계 등도 검토 대상이다.

그는 특히 "시장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보다 근본적인 도덕적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경제 중심의 사회가 낳은 폐해를 극복하려면 도덕적 갈증을 채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풍요가 최고의 선이 돼버린 상황에서 여타의 가치들은 쉽게 무시되고,경제논리에 가려 어느 정도의 비도덕은 묵인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관용이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진단도 뼈아프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오늘날 도덕적 가치의 기반을 이루는 다양한 자유주의 정치이론들을 검토하고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비교한다. 아울러 미국 정치사를 되짚으며 도덕적 가치가 곤경에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저자는 시민의식과 공동체,시민적 덕성을 강조하는 정치,좋은 삶에 대한 문제들과 직접 씨름하는 정치를 옹호한다. 그는 공공선의 입장에서 "우리의 공공생활이 약해지고 공통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느낌이 희미해질 때 전체주의적 해법을 제시하는 대중정치에 빠질 위험이 크다"면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도덕적 · 정치적 과제는 바로 우리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