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차라리 화를 내고, 욕이라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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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약속한 것을 행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라는 것이 화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의사들은 건강차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참으라고 말한다. 철학자들은 화를 참으면 실수하거나 후회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연 화가 날 때 참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욕이라도 하고 풀어 버리는 것이 좋을까. 크게 소리를 지르든 혹은 속으로 화를 삭이든, 그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누구나 화에 대한 감정표현은 한다. 아무리 덕망이 높고 수행을 오래한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평생 화 한 번 안 냈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를 낸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본 나가노의 금강사란 절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해 방문은 조금 특별했다. 일본의 여러 매스컴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 와 본의 아니게 유명인사가 되어버려 여기저기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그만 약속시간을 어기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일본의 모 회장님과 만나기로 한 자리에 15분 정도 늦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 지리가 서툰 필자로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약속만큼은 정확하게 지키기로 소문난 일본에선 그건 작지 않은 사고였다.
나는 회장을 만나자마자 “스미마셍”을 연발했고, 회장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괜찮습니다.”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나의 눈엔 그것이 미소가 아닌, 감정을 삭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차라리 화를 냈으면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거, 왜 늦었소?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는 거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고, 아옹다옹 말다툼을 하면서 화는 자연스레 누그러지고, 오히려 화낸 사람은 곧 미안해져 분위기는 이내 화기애애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본인 회장은 달랐다. 만나면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화를 속으로 참아가며 억지로 웃는 것이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고나 할까. 세계에서 화 안내고, 욕 안 하기로 유명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참으로 딱해 보였다. 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배출해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냔 말이다. 차라리 실컷 화를 내고 풀면 좋으련만. 일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오해도 하고 때로는 실수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차라리 화를 내고 잘못을 지적하면 그것으로 서로 감정을 풀 수 있으련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둔다면 상대방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 서로가 불편해지고 관계유지가 어려워진다.
오랜 시간 함께 해야 하는 직장에서 이런 상사를 만난다면 부하직원은 무척 힘이 든다. 실수에 대해 그냥 욕이라도 해서 풀어 버린다면 좋을 것을, 부하직원은 속으로 삭히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뒤 끝 있는 윗사람을 상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좋은 상사는 앞에서는 화를 내지만 나중에는 격려하며 달래준다. 애정 어린 화는 격려인 것이다.
옛 성현들은 화내지 말고 참으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화를 내는 순간, 마음속에 스트레스가 풀려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서로 간의 거리감을 좁히는 소통의 과정도 될 수가 있다. 화를 내되 벼락처럼, 새가 창공을 나는 것처럼 흔적이 없으면 되는 것이고, 그 감정을 내세워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 성을 낼 일이 생기더라도 성내는데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침묵이 때로는 최고의 대화라고 하지만 소통은 아니다. 가슴을 열지 않고 웃는 대화도 결코 소통일 수가 없다. 욕은 언어의 배설물이라고 하지만, 욕쟁이 식당할머니의 욕은 아무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식된 웃음이 성내는 순박함보다 더 나쁜 것이다. 장자(莊子)는 사람은 타인과 소통하면서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했다. 화가 나면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차라리 욕이라도 해라. 흔적은 남기지 말고.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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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본 나가노의 금강사란 절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해 방문은 조금 특별했다. 일본의 여러 매스컴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 와 본의 아니게 유명인사가 되어버려 여기저기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그만 약속시간을 어기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일본의 모 회장님과 만나기로 한 자리에 15분 정도 늦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 지리가 서툰 필자로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약속만큼은 정확하게 지키기로 소문난 일본에선 그건 작지 않은 사고였다.
나는 회장을 만나자마자 “스미마셍”을 연발했고, 회장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괜찮습니다.”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나의 눈엔 그것이 미소가 아닌, 감정을 삭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차라리 화를 냈으면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거, 왜 늦었소?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는 거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고, 아옹다옹 말다툼을 하면서 화는 자연스레 누그러지고, 오히려 화낸 사람은 곧 미안해져 분위기는 이내 화기애애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본인 회장은 달랐다. 만나면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화를 속으로 참아가며 억지로 웃는 것이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고나 할까. 세계에서 화 안내고, 욕 안 하기로 유명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참으로 딱해 보였다. 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배출해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냔 말이다. 차라리 실컷 화를 내고 풀면 좋으련만. 일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오해도 하고 때로는 실수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차라리 화를 내고 잘못을 지적하면 그것으로 서로 감정을 풀 수 있으련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둔다면 상대방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 서로가 불편해지고 관계유지가 어려워진다.
오랜 시간 함께 해야 하는 직장에서 이런 상사를 만난다면 부하직원은 무척 힘이 든다. 실수에 대해 그냥 욕이라도 해서 풀어 버린다면 좋을 것을, 부하직원은 속으로 삭히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뒤 끝 있는 윗사람을 상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좋은 상사는 앞에서는 화를 내지만 나중에는 격려하며 달래준다. 애정 어린 화는 격려인 것이다.
옛 성현들은 화내지 말고 참으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화를 내는 순간, 마음속에 스트레스가 풀려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서로 간의 거리감을 좁히는 소통의 과정도 될 수가 있다. 화를 내되 벼락처럼, 새가 창공을 나는 것처럼 흔적이 없으면 되는 것이고, 그 감정을 내세워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 성을 낼 일이 생기더라도 성내는데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침묵이 때로는 최고의 대화라고 하지만 소통은 아니다. 가슴을 열지 않고 웃는 대화도 결코 소통일 수가 없다. 욕은 언어의 배설물이라고 하지만, 욕쟁이 식당할머니의 욕은 아무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식된 웃음이 성내는 순박함보다 더 나쁜 것이다. 장자(莊子)는 사람은 타인과 소통하면서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했다. 화가 나면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차라리 욕이라도 해라. 흔적은 남기지 말고.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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