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안전판으로서의 자본이득과세

97년 이후 투기난폭성 심화돼…외환거래세 등 균형장치 절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본시장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투기장으로 변해왔다. 월가에도 없는 탐욕의 제도들이 도입됐다. 투기펀드들이 기업가를 유린하고 기업경영을 주가의 볼모로 잡는 일은 다반사다. 외환관리제도가 외환거래제도로 이름을 바꿔 달면서 외환시장도 투기 세력에게 활짝 문을 열었다. 채권이자세가 폐지되면서 투기는 더욱 장려됐다. 은행은 대출이 아니라 증권 펀드를 파는 곳으로 문패를 갈아 달았다. 증권법제는 투기법제로 전환됐다. 투기를 본질로 하는 옵션이나 선물시장은 세계 최대의 거래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오도된 강제가 있었지만 소위 재벌을 개혁하고 견제한답시고 좌파 세력들이 세계의 투기세력들을 서울로 불러들인 결과이기도 했다.

주식매매 차익에 소득세를 매기는 자본이득과세(capital gain tax)를 이제는 도입할 때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주식이나 채권, 파생상품 등에 비과세 혜택을 줘야 할 이유는 없다. 과거 주식매매 차익에 면세 혜택을 부여했던 것은 취약한 자본시장을 육성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던 것인데 국제화된 대규모 투기세력이 모여드는 거대 시장에서 세제 혜택을 줄 명분은 더욱 없다. 파생상품은 제로섬 게임이므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하다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이너스 섬 게임인 복권에조차 세금을 매기고 있다. 제로섬인 외환거래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선물 옵션 시장은 한국이 세계 최대의 시장이며 투기적 거래가 어느 나라보다 만연해 있다. 필요악적 효율성의 한계를 넘어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는 형국이다. 월스트리트형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자본시장 통합법을 제정하고 예금 은행들까지 투기판으로 밀어넣은 그동안의 정책 오류도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올 들어서만도 주식에 17조여원, 채권에 63조여원이나 급속하게 유입된 국제자금 흐름만 해도 그렇다. 거대한 부동자금이 서해안의 조수간만처럼 들고나면서 한국 경제의 대내외 균형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다. 한마디로 탐욕의 구조가 너무 멀리 나갔다. 환율 전쟁 와중에 지금 한국으로 밀려드는 핫머니들이 초래하는 부작용이 자본시장의 오도된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외환시장만이 문제는 아니다.

급등락하는 주식시장이 국민을 부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오히려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도 직시해야 한다. 현물시장도 그렇지만 선물과 옵션시장은 수없는 파산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파산법정에는 파생상품 투자로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이 줄을 선다. 개인 투자자들이 필연적 손실에 직면하는 것은 교과서조차 부정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은 유독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주식워런트증권(ELW)이나 현물 주식도 마찬가지다. 결국 세계 어느 나라보다 투기 상품이 다양하고 투기적 매매 패턴이 내재화됐다. 카지노가 필요 없다고 할 정도다.

증권시장의 자본조달 기능은 이미 금석문이 된 지 오래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 증권시장이고 자본시장의 중요 기능의 하나인 가격서치(search) 기능조차 이미 실종신고를 냈다. 창업자금을 회수한 다음엔 아예 기업을 포기하는 것이 증권시장의 전도된 기능이다. 바야흐로 근대적 증권이론을 모두 폐기시킨 포스트모던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물론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공통된 질병이다. 그래서 더욱 바로잡아야 한다. 매매 차익에 과세하는 것으로 투기의 난폭성을 어느 정도는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장기투자에 대해서는 차등 과세할 수 있고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할 것도 없다. 이것이 G20 이후의 진정한 과제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