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美 중산층의 반란' 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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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 중간선거서 표로 심판중산층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지난주 있었던 미국 중간 선거의 교훈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유례없는 참패를 한 데는 중산층 유권자들의 이반(離叛)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선거 직전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교외(郊外)에 거주하는 중산층 유권자 10명 중 6명이 공화당 후보를 찍겠다고 답했다.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을 도왔던 중산층.이번에는 55%가 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한국도 감세 등으로 불안 없애야
중산층이 이 같은 선택을 한 데는 세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다. 제이콥 해커 예일대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2000년 이후 미국 중산층은 위기에 직면했다. 실질중위소득(Real Median Income)이 급락했다. 중산층 소득이 전체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1967년에는 52.4%를 차지했지만 2008년에는 46.6%로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뒤 상황은 더 악화됐다. 치솟는 실업률과 폭락하는 자산 가격에 신음해야 했다. 둘째 정책 사각 지대에 놓였다. 위기 이후 대부분의 정책들은 부유층과 빈곤층에게 집중됐다. 월스트리트 금융사와 자동차 업계 등 대기업들은 구제 금융을 받는 등 정부의 보호를 받았다. 빈곤층을 위해서는 보험 대상을 늘리는 것을 초점으로 한 의료보험 개혁을 단행했다. 중산층 감세 정책은 뒤로 미룬 채 극빈층을 위한 임시 구호프로그램(TANF) 확대 명목으로 50억달러를 투입했다.
셋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늘었다. 오바마의 경제 정책은 대규모 재정적자를 야기했다. 2008년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70%였던 총채무는 2010년 11월 현재 93%로 늘었고 2012년에는 10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중산층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경험상 조만간 재정 건전성 개선의 명목으로 자신들에게 조세 부담이 가중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중산층의 이반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첫째 우리 중산층도 경제난을 겪고 있다. KDI의 조사에 따르면 중산층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 줄어왔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1996년 68.5%였던 중산층은 2000년 61.9%,2009년에는 56.7%로 줄었다. 가까스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피한 중산층은 삶에 어려움을 느낀다. 고용은 불투명하고 임금은 제자리 걸음인 데다 체감경기는 얼음판인데 생활 물가는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책적 소외감을 느낀다. 현 정부 들어 부유층은 일련의 감세 조치 혜택을 봤다. 임기 초기에 시행한 과감한 환율 조정 정책은 수출형 대기업들에 큰 도움을 줬다. 한편 빈곤층 대상 정책은 거의 매일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310조원 규모의 2011년 예산 중 복지예산은 86조3000억원에 이를 정도다. 반면 중산층을 위한 정책은 초라했다. 2009년 발표된 휴먼 뉴딜 등 중산층 정책은 구호에 머물렀다.
셋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중산층은 천문학적인 재정 지출과 그로 인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국가 채무를 우려섞인 눈으로 지켜본다. 텅 빈 나라 곳간을 다시 채우는 일은 언제나 유리 지갑인 자신들의 몫임을 알기 때문이다. 노후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치 복지지상주의를 부르짖는 듯한 여야 정치인들은 복지의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연금 개혁을 못 본 체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방치될 경우 미국에서 일어난 중산층의 반란이 우리나라에서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산층의 선택은 미국에서 그랬듯이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 일대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우리나라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국정과제를 제시해준 셈이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