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서울 정상회의] 쇠고기 카드 꺼내든 美, 자동차에서 더 큰 양보 원하나

● 한·미 FTA 타결 불발 … 결렬 배경과 향후 전망

픽업트럭 관세 철폐 연장 등 기존 협정문 수정 압박…워싱턴서 합의안 도출할 수도

사흘간의 한 · 미 통상장관 회담이 공식 마무리된 지난 10일 밤.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대표가 서울 시내 모처에서 급히 만났다. 11일 열리는 양국 정상회담 전에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을 타결짓기 위해서다.

쇠고기와 자동차 등 핵심 쟁점에서 합의안 도출이 시도됐지만 이견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심야회동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이 대통령은 "상황이 그렇다면 G20 서울 정상회의 이전에 타결하는 것은 어렵고 앞으로 추후 협상을 하는 게 좋겠다"는 지침을 내렸다.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은 예상보다 45분이나 길어졌다. FTA 타결을 위한 정치적 결단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과는 '불발'이었다.

◆쇠고기 · 자동차 모두 이견

표면상 FTA 추가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쇠고기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쇠고기 시장을 추가 개방하라"고 막판에 집요하게 요구했다. 협상 테이블에 쇠고기 관련 자료를 수북이 쌓아놓고 무언의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에 맞서 한국은 "FTA를 안하면 안했지 쇠고기는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에 따른 촛불시위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정부에 쇠고기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협상 결렬의 실질적 이유는 쇠고기보다 자동차 분야의 이견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한국에서 쇠고기의 파괴력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최근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급증하면서 미국 쇠고기 업자들조차 무리한 쇠고기 시장개방보다 FTA 조기 타결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분야에서 더 많은 양보를 얻어 내기 위해 쇠고기를 지렛대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커크 대표는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따라온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만나 "협상이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로 막혀 있다"며 "협상의 상당 부분을 자동차 문제 조율에 할애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의 최대 난제는 미국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 기한 연장 문제다. 기존 FTA 협정문은 현재 25%인 미국 픽업트럭 시장 관세를 협정 발효 뒤 10년간 단계적으로 철폐하도록 했다. 미국은 픽업트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 철폐기한을 15년 이상으로 늘리자고 요구했다. 문제는 이를 수용하려면 기존 FTA 협정문을 손대야 한다는 점이다. "협정문에 점 하나 고칠 수 없다"고 강조해온 한국으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다.

협정문을 수정하면 국회 비준을 장담하기 어럽게 된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번 FTA 추가 협상에 대해 '일방적 퍼주기'라며 비준 거부 입장을 밝혔다. 때문에 협정문 수정 여부도 협상 막바지까지 이견으로 남았다.

협상 시한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양보를 해선 안된다는 부담도 컸다. 양국 정상은 당초 '정상회담 전 FTA 타결'을 목표로 했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시한을 정해놓고 하는 협상만큼 바보 같은 협상은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워싱턴으로 옮겨 협상 계속

추가 협상이 결렬됐지만 완전 무산된 것은 아니다. 양국 모두 FTA의 경제적 이득을 잘 알고 있고 있는 데다 무산될 경우 후폭풍도 크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합의안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 정상은 회담에서 협상 장소를 미국 워싱턴으로 옮겨 FTA 추가 협상을 계속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양측이 수용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추가협상에서 진전된 사항도 많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자동차 안전기준과 연비기준을 일부 완화하기로 했다. 또 '한 · 유럽연합(EU)FTA와 균형 맞추기'차원에서 자동차 수입부품에 대한 관세환급액을 5%로 제한하기로 했다. 한국은 대신 농산물 분야의 일부 민감품목에서 관세 철폐 시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했다. 2007년 한 · 미 FTA 협정 타결 때 합의했으나 미국이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전문직 비자 1만5000개의 한국 배정을 본격 추진한다는 약속도 미국으로부터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이 상당히 진전된 것은 사실이고 기술적으로 결론을 내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용석/서기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