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G20회의 후 한국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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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제' 채택 성과이자 부담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났다. 세계적으로 거둔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회의였지만,한국의 입장에서는 얻은 것이 많았다. G20회의를 기존 G8 이외 국가로서 처음 개최했다는 것 자체가 성과다. 나아가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개발의제'를 채택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경제발전을 세계의 모델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민간 투자로 성장 동력 만들어야
이번 G20회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것을 실감케 하는 이벤트였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한국의 위상이 올라갈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 경제는 당장 나쁘지 않다. 작년 대다수 선진국이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중에 한국은 그것을 면했고,올해도 6% 가까이 성장하리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다. 한국이 작년 마이너스 성장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높은 환율 덕분이었는데,그것은 역설적으로 2008년에 외환위기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올해 성장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것도 여전히 높은 환율에다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 덕분인데,거기에는 말 많은 4대강 사업도 포함돼 있다.
단기적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추세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세계적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전 경제 '기적'의 여위(餘威) 때문 아닌가. 위기 후의 성과를 보면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평균 4.1% 늘어났지만,한국인에게 돌아가는 진짜 소득인 국민총소득은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것은 주로 높은 무역 의존도 하에서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총소득 계산에는 중요한 요소가 누락돼 있다. 위기 후 활짝 열린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이 거둔 이득 중 배당금이나 이자를 받아 나간 것은 계상하지만,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차익은 계상하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 외국인의 차익이 1년에 수백억달러에 달하고,그 중 상당 부분이 실제로 빠져나갔다. 한국인이 해외투자에서 거둔 차익도 있지만,외국인의 차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것을 감안한다면 1998년 이후 한국의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3%에 미달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선진국도 아니면서 2%대로 성장하는 나라가 경제발전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제부터는 수출보다 내수를 키우지 않으면 성장이 어려울 것이다. 4대강 사업 같은 재정 지출이 아니라 민간 투자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외환위기가 너무 쉽게 일어나고 외국인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금융시스템도 고쳐야 한다. 그리고 물론 떨어지는 출산율,늘어나는 국가채무로 인한 성장 잠재력 약화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과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위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숙제'다. 세계 경제가 70여년 만의 위기에 끌려들어간 지난 2년여 동안 전 세계가 위기 극복에 매달렸고,그 과정에서 G20 회의가 만들어졌다. 한국은 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을 뿐 아니라,G20 회의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그것이 위기 전부터의 숙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이 숙제를 풀지 못하면 앞으로도 한국이 세계의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개발의제를 통과시킴으로써 '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한국이 과거의 경제 '기적'을 계속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는 십수년 전의 과거사보다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해 나가는가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계속 위상을 높여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될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