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책값 딜레마

취업포털사이트 커리어가 지난 9월 직장인 11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한 달에 평균 3만2000원을 들여 2.6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술자리에는 5.8회 참석해 12만6000원씩 썼다고 답했다. 독서에 들이는 비용이 술값의 4분의 1 수준이다. 독서를 자주 못하는 이유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가 가장 많았지만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왠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등 돈과 관련된 응답도 13%나 됐다.

책값이 얼마나 되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서평 전문지 출판저널이 올해 상반기 출간된 주요 신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만2000원짜리 책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1만원,9000원,9500원 등의 순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1만2000원짜리 책이 많은 데는 온라인 서점들의 책값 할인율 및 배송료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주요 온라인 서점들은 신간 가격을 10% 할인해 주는 게 보통이다. 판매가가 1만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하고 1만원 미만은 2000원의 배송료를 받는다. 예를 들어 1만2000원짜리 책을 온라인 주문하면 판매가는 10% 할인된 1만800원이다. 1만원 이상인 만큼 배송료를 받지 않는다. 반면 정가 1만원짜리 판매가는 10% 할인된 9000원이므로 배송료 2000원이 붙어 결제금액은 1만1000원이 된다. 정가가 싼 책이 배송료 때문에 총 결제금액에선 오히려 비싼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이는 출판계에서 온라인 서점의 영향이 커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온라인 서점 '리브로'가 대대적 할인행사를 벌인 데 이어 오픈마켓 '11번가'도 반값 이벤트에 나서자 출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떤 책은 조건 없이 반값에 팔고,어떤 책은 정가의 10%를 할인한 다음 고객이 보유한 멤버십 포인트를 통해 총 50% 정도 깎아준다고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당장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출판 생태계가 흔들린다는 측면에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리는 책이 늘어나면 출판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면서 좋은 책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책값의 딜레마라고 할까.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신간 발행 종수가 2.1% 감소했다고 한다. 할인 경쟁을 하더라도 출판 기반은 훼손하지 않는 게 도리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