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내가 딸랑이라고?…'밴댕이' 팀장 비위 맞추는 게 편하지"

● 직장상사 코드 맞추기

타고난 참모 체질?
술자리는 꼭…점심 약속도 비우고…상사 한마디면 '개종'도 마다 안 해

난 '에이스'…내 갈길 가련다
전문가급 인맥과 실력이 배경…상사가 오히려 코드 맞추게 해야지
"김 과장,내말이 틀려,맞아?"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시작이다. '예스'냐 '노'냐,양자택일 오엑스(○,X) 퀴즈 시간이다. 하긴 다행이다. 오늘은 비교적 쉽다. "10대 걸(girl) 그룹의 핫팬츠 착용을 금지한다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동의를 구하는 거다. 고민할 것도 없다. 이럴 때 정답은 '맞장구'다. 웃으며 대답한다. "당근,말도 안 되죠."배알도 없느냐고? 모르시는 말씀이다. '넌 나랑 맞는 게 도대체 뭐냐?'며 고개를 흔드는 '밴댕이'팀장 시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소한 게 쌓이면 '역린'이 된다. 눈밖에 난다는 얘기다. 소녀시대 왕팬인 그에게 원더걸스 예찬이 금기인 것도 그래서다.

정치판에만 코드가 있는 게 아니다. 직장에도 직장버전 코드가 있다. 코드를 맞추면 직장생활이 평탄하고 못 맞추면 꼬이는 건 매한가지다. 그러다보니 야당을 여당으로,캐주얼을 정장으로,랩을 트로트로 갈아치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김 과장,이 대리가 부지기수다.

◆"코드 맞추는 게 편해"코드 맞추기의 기본은 상사 유형을 파악하는 일이다. 중견기업 A사의 국내 영업팀에는 팀장만 모르는 8명의 '기쁨조'가 있다. 술만 먹으면 새벽까지 '한잔 더'를 외치는 술고래 팀장이 삐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팀장은 3차까지 술자리가 이어지지 않으면 "팀워크가 부족해 영업 실적이 좋지 않다"며 팀원들을 닦달한다. 일단 1차 회식에만 참여한 뒤 그날 임무를 맡은 기쁨조 인원들만 남고 나머지 팀원들은 하나둘씩 쥐도 새도 모르게 자리를 뜬다.

국내 모 컨설팅 회사 최모 과장(37)은 자신을 '빨대'라고 부른다. 특정 지역 출신 중역들이 많은 회사에서 비주류인 상사를 위해서 스스로 정보의 빨대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선후배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파하면 밤 12시 이후라도 부장에게 전화를 건다. 회사 구성원들의 불만사항과 경쟁사 동향 등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가만히 앉아 회사에서 오가는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부장으로선 최 과장을 예뻐할 수밖에 없다.

취향을 맞추는 것은 필수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박모씨(29 · 여)는 상사의 대추차 사랑 때문에 5단계 대추차를 만들었다. 박씨는 "새로 온 지사장이 대추차를 좋아한다고 하기에 시골에서 유기농 대추를 특별 공수해서 달였다"며 "너무 묽다는 평을 듣고 5가지로 농도를 조절한 대추차를 대령해 취향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한모씨(30)는 상사를 위해 개종(?)했다. 그는 "어릴 때 교회에 다니다 안 다닌 지 20년이나 됐는데 상사가 종교에 워낙 열성인 것을 보고 나도 신자인 척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친 김에 상사가 다닌다는 서울 강남의 큰 교회에서 하는 행사에 간 적이 있다고까지 거짓말을 했다. 한씨는 "상사와 친해진 건 좋았는데 상사가 식사 전 기도를 할 때 함께 고개를 숙이고 기도해야 하는 게 문제"라고 푸념했다.

◆코드에도 궁합이

때론 자발적 코드 맞추기도 없지 않다. 서로의 성격이 잘 맞아떨어질 때다. 국내 모 유통회사에 다니는 김광호 대리(31)는 원래 아이폰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팀장이 갤럭시S 휴대폰을 샀기 때문이다. 그도 갤럭시S를 샀다. 어느 날 팀장이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돼 곤란해하자 김 대리는 미리 충전해 둔 배터리를 곧바로 팀장에게 건넸다. '애니타임'을 자처하는 그는 개인적인 점심약속도 웬만해선 잡지 않는다. 상사가 혹시 점심약속이 없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상사가 갑작스럽게 회의한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면,김 대리는 혼자 쓸쓸히 삼각김밥을 먹곤 한다. 그는 그래도 "타고난 참모체질일 뿐 절대 아부나 코드 맞추기가 절대 아니다"고 말한다.

한 건설회사 총무팀에서 일하는 정호석 과장(37)도 코드가 맞는 상사에게 스스로 충성하는 열성파다. 그는 최근 한 달간 왼팔에 침을 맞아야 했다. 스크린 골프에 빠진 팀장이 3명의 팀원에게 무조건 골프를 배우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왼손잡이인 그는 마땅히 연습할 곳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오른손 스윙을 연습하다 뒷땅을 심하게 때리면서 부상을 입었다. 그는 "4명이면 딱 한팀이니까 좀 희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여야 맞추지

문제는 코드의 영역을 넘어서는 경우다. 모 대기업 비서실 직원인 전모씨(33 · 여)는 치마입기가 딱 질색이다. 다리라인이 자신없어서다. 하지만 반년 동안 치마를 입어야 했던 '끔찍한'기억이 있다. 새로 영입된 부회장이 바지정장 입는 것을 대놓고 싫어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성희롱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당시엔 항의 한번 못하고 치마정장을 입었다. 전씨는 "다행히 11월이 되면서 추워지는 바람에 바지정장으로 슬그머니 돌릴 수 있게 됐지만 회사 나오는 자체가 고역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뻔뻔한 상사의 코드를 맞추기는 어렵다. 국내 한 문구회사에는 영업하라고 준 접대비를 개인 술 값으로 써버리고,회사 물품 구매할 때 본인 물품도 슬쩍 끼워넣는 부장이 있다. 정작 부원들이 영업비를 쓰면 '왜 이렇게 많이 썼냐'며 큰 소리다.

이 회사 3년차인 이모 대리(31)는 "김정일 · 김정은 부자는 살이 올라가는데 인민들은 앙상해지는… 뭐랄까 북한에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책이 없는 건 오락가락형 상사도 마찬가지다. 맞출 만한 코드가 아예 없다. 오로지 윗선의 말만 따른다. 임원 말 한마디에 애써 진행해온 기획안을 통째 뒤집기도 한다. 소신이 있을 때가 있기는 하다. 밥 먹을 때다. 점심은 부대찌개,저녁은 삼겹살,술은 막걸리다. "먹는 것만큼만 코드가 확실하면 부원들의 개고생은 없을 것"이라고 한 직원은 말했다.

◆부럽다 부러워!

직장 내 코드를 무시하는 간 큰 직장인은 드물다. 그럼에도 제갈길 가는 직장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실력이 배경이다. 국내 제조업체에 다니는 조모 차장(39)은 회사 내 '에이스'다. 기획력을 타고났다기보단 네트워킹으로 일을 해결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출신학교 동문 동창을 주르륵 꿰는 것은 물론 취미 동호회까지 아우르며 척척 동원하는 전문가급 인맥이 그의 자산이다. 팀장과 임원들이 오히려 그의 코드를 맞추느라 열심이다.

같은 회사의 박 대리(32)는 정반대의 이유로 상사와 코드 맞추는 걸 포기한 경우다. 그는 부장과는 태생적으로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체감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라인'을 타기로 베팅했다. 직속 부장보다 다른 부서의 팀장과 임원에게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가뭄에 콩나듯하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상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거스르지 않고 '순치'되는 요령을 배운다. '직장 상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내리는 결론이다. 변하고 맞춰야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얘기다.

이관우/이정호/이상은/이고운/강유현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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