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홀로서기 한다지만…500억~900억유로 구제금융 유력

"그리스와 3가지가 다르다"

부채 성격
그리스 빚 절반이 공공부채…아일랜드는 97%가 민간 부채

상환시기
부채 60% 1년내 만기 도래…"지금만 넘기면 고비 없다" 해석

경제 체질
ITㆍ의약ㆍ제조업 기반 탄탄…유로화 약세 효과 기대
재정위기에 빠진 아일랜드가 구제금융과 관련,분명치 않은 행보를 보이면서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유럽연합(EU)과 최근 위기 사태와 관련한 논의는 진행하면서도 "경제주권을 지키기 위해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6~17일 EU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재정위기 전염을 막기 위해 아일랜드에 대한 조기 구제금융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아일랜드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15일 "아일랜드가 EU에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더모트 어헌 아일랜드 법무장관은 국영 RTE방송에 출연해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이냐'는 질문에 "매일마다 새로운 일이 생긴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아일랜드 정부가 외부 지원설에 '절대불가' 방침을 밝혔던 것에 비하면 적지 않은 태도 변화다. 아일랜드 재무부는 "EU와 시장 상황에 대한 논의는 하고 있지만 구제금융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일단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아일랜드와 EU 간 접촉에 대해 "시장불안 해소를 위해 빨리 구제금융을 받으라는 독일 등의 압력이 커지자 아일랜드가 EU와 협상에 나섰다"며 아일랜드 당국자들의 언급과 달리 전했다.

주요 외신들은 EU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구제금융 가능성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아일랜드가 지원 없이는 버티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 규모도 500억~900억유로(약 78조~140조원)로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변방국의 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비화됐던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EU가 아일랜드에 외부 지원 수용을 적극 종용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자력 갱생'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아일랜드의 배짱에는 그리스는 부채의 절반이 공공부채였지만 아일랜드는 공공부채가 전체 채무의 3%에 불과해 그리스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또 1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가 전체 부채의 60%가량 돼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외부 도움 없이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특히 제조업 기반이 없던 그리스와 달리 정보기술(IT),화학,의약 분야 기반이 탄탄한 만큼 최근의 유로화 약세를 잘 활용하면 빠른 시간 안에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는 게 아일랜드의 주장이다. 아일랜드 일간 아이리시타임스는 "과거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실시했지만 최근 위기전염론이 불거진 것처럼 아일랜드에 구제금융을 한다고 해서 유로존 위기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EU의 구제안 수용 주장을 반박했다. 벨파스트텔레그래프도 "아일랜드는 내년 중반까지 만기가 돌아올 부채와 관련한 자금을 이미 조달한 상태"라며 "힘들겠지만 외부 도움 없이도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바트 오키페 아일랜드 기업통상장관도 "힘들게 되찾은 경제주권을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요 외신들은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를 겪었던 아일랜드가 경제주권을 넘기는 것을 최대 치욕으로 여겨 (비합리적으로) 외부 지원을 회피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길잃은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켜라'는 부인의 충고를 끝까지 거부하는 격"이라며 아일랜드의 자존심 지키기 행보를 비꼬았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