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취업과 창업 사이

대학에 갈 일이 있으면 수업 전에 꼭 거수 조사를 해본다. 창업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다. 한 달 전 모 대학을 방문했을 때 200명 가운데 2명만이 손을 들었다. 벤처붐이 일 때였으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최근 트렌드는 창업에 관심이 전혀 없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놀라울 정도다.

청년 실업률이 7.0%나 되고 28만8000명의 젊은이들이 실업의 수렁에 빠져 있는 현실에서 '남들이 안 뽑으면 내가 회사 만든다'는 배포는 찾을 길 없다. 이런 실정에서는 페이스북을 창업해 26세에 7조원 갑부가 된 마크 주크버그 같은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창업을 취업보다 하위에 두는 건 사회 풍토와 관련이 있다. 학교에서도 취업에 훨씬 많은 공을 들인다. 광고문구에 나오는 취업률 전국 순위 같은 것의 기준이 되는 취업이 뭘까. 정부가 산정하는 취업률 기준에 따르면 해당자가 4대 보험 혜택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적인 요건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창고에서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작곡가 영화감독 개그맨 방송작가 소설가 등으로 성공해도 이런 사람들은 취업 숫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 기준이 중심이 되다 보니 학교에서도 취업을 장려하고 그것이 분위기가 돼 학생들도 소위 간판을 보게 된다. 이왕이면 남들이 아는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하게 된다. 모두들 취업하겠다고 몰리니 회사들도 선별을 위해 소위 '스펙'을 따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변했다. 부의 재편,기회의 시대가 왔다. 예전 같으면 기존 대기업이 영업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절대 우위를 가졌지만 인터넷이 기반 미디어가 되고 스마트폰까지 상용화된 지금은 작은 기업,신생 회사,후발 업체라고 해서 절대 불리할 것이 없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알리바바닷컴 같은 성공 사례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국내 상황도 아주 좋아졌다. 창업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길도 많다. 서울시를 예로 들어보면 지난해부터 '청년창업 1000 프로젝트'를 마련,창업공간과 사무집기 아이템개발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제1기 과정을 거쳐 사업자 등록을 마친 기업이 500개가 넘는다. 중소기업청의 경우도 2012년까지 모두 3만명 규모의 청년창업자를 양성하겠다는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여기에다 지역별로 창업지원센터가 대부분 개설돼 있다.

정말로 부족한 것은 혁신을 장려하고,도전을 격려하고,실패를 자산으로 보는 문화다. 경제 중심 시대에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이런 사회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형식을 빌려 쓴 칼럼에 좋은 메시지가 있다. 칼럼 제목은 '더 많은 잡스(jobs · 일자리란 뜻도 되고 스티브 잡스를 지칭하는 것도 된다)가 필요하다'였다. 골자는 이렇다. "우리는 천재들뿐만 아니라 수백만명의 미국 청소년들에게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정부가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수백만개의 벤처기업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

기업들도 할 일이 있다. 창업을 덕목으로 인정하는 문화를 선도해야 한다. 기존 직원들에게 사내 벤처 창업 기회를 주면 된다. 회사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사회적으로 기업가정신을 북돋는 분위기를 이끌 수 있다.
취업과 창업 사이에는 벽이 없다. 그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