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또 출렁] 아일랜드, 구제금융 거부…"病 키워 EU 생존 위협" 공포 확산

유로존 재무회의 '빈 손'

부채 英·獨 은행권에 집중
아일랜드 "버티겠다" 고집
IMF·ECB 금융팀 급파
"최대 1000억유로 투입 유력"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일랜드의 재정위기 사태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중국의 물가불안에 따른 긴축 가능성과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있다.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아일랜드 측 거부로 외부 지원이 지연되면서 재정이 취약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변방국가로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구제금융 실시 여부를 확정해서 불확실성을 제거할 것으로 기대됐던 16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EU,아일랜드 때문에 '생존위기'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올리 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경제 · 통화담당 집행위원 발언을 인용,"아일랜드 정부와 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이 아일랜드 은행구제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렌 위원은 "아일랜드 문제가 심각하다" 며 "아일랜드 국가채무는 내년 중반까지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채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산업 분야에 협의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재무장관 회의에선 당초 기대와 달리 아일랜드 구제금융과 관련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아일랜드 정부의 예산감축과 경쟁력 확보 등 각종 위기대처 노력을 환영한다"는 의례적 입장을 내놓은 뒤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했을 뿐이다. 브라이언 코웬 아일랜드 총리는 자국 의회 연설에서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고 아일랜드는 내년 중반까지 버틸 자금을 이미 확보했다"며 구제금융이 필요하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처럼 아일랜드 사태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위기전염을 막을 시기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아일랜드가 구제금융 요구를 거부하면서 EU가 '생존위기'로 내몰렸다"고 보도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유로존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EU도 살아날 수 없다"며 "아일랜드 사태가 EU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며칠째 반복되는 "구제금융 임박"

글로벌 시장에선 여전히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대세다. 아일랜드의 부채가 공공부채가 아니라 금융권 부채에 집중됐다는 특성이 있긴 하지만,정부의 지급보증이나 자본투입 없이는 아일랜드 은행들이 예금지급 불능 사태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행부문의 부실이 심화하면 아일랜드 재정에 큰 부담이 돼 결국 아일랜드 정부도 유로존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IMF와 ECB 등의 금융전문팀이 아일랜드로 급파된 것으로 이날 확인되면서 아일랜드의 잇단 부인에도 불구,구제금융과 관련한 협의가 막바지에 이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EU가 아일랜드에 최대 1000억유로(154조원)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비(非)유로존 국가인 영국이 아일랜드 사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논의도 지원임박설에 힘을 더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영국은 수십억파운드의 자금을 대출해 별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이례적으로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유로화 사용국가들과 입장을 조율했다.

한편 중국에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대두되고,미국에서 양적완화 회의론이 거론되고 있는 점도 유럽재정 위기 해소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물가 상승과 미국 경제의 불안이 세계 경제 안정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유럽경제 회복에도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급속한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과도한 물가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에선 유럽 재정위기로 안전자산 선호가 재연돼 달러값이 오르면서 6000억달러 규모의 '2차 양적완화'효과가 상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달러값이 오르면 "수출을 확대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미 정부의 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