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광저우의 치파오 미인들

중국의 대표적 미인으로는 흔히 서시와 왕소군,초선,양귀비를 꼽는다. 서시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게 만든(沈魚 · 침어) 미모를 지녔으며,왕소군은 날아가던 기러기를 내려앉게(落雁 · 낙안) 했다고 한다. 초선과 양귀비도 달이 숨어버리거나(閉月 · 폐월) 꽃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羞花 · 수화) 빼어난 미색을 갖췄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삶이 그리 순탄했던 건 아니다. 나무꾼의 딸로 태어난 서시는 월나라 왕 구천의 복수를 위해 앙숙관계였던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보내진다. 한나라 원제의 후궁이었던 왕소군은 정략 결혼으로 흉노에게 시집을 갔다. 초선은 동탁과 여포를 제거하기 위한 첩자가 되었고,양귀비는 안녹산의 난 때 병사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모두 난세를 거치면서 좋든 싫든 미인계의 주역이 되었던 셈이다. 미인계는 현대에 도 자주 등장한다. 영국의 국방장관 존 프로푸모는 크리스틴 킬러라는 구 소련 스파이와 사귄다는 사실이 알려져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2차대전 종전 직후 일본 여배우 하라 세스코도 맥아더 사령부의 고위장교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캐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복 후 남로당이 김수임을 주한미군 헌병사령관의 현지처로 들여보낸다.

유형은 좀 다르지만 베트남 전쟁에선 '하노이 한나'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미군들의 심금을 울렸다. "투훙(가을 향기)입니다"로 시작하는 그녀의 선무방송은 미군의 전의를 꺾어 총포보다 강력한 효과를 냈다고 한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북한이 290여명의 미녀 응원단을 보내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연미인들'의 인공기 흔드는 모습을 부각시켜 북한의 강성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미인계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미모의 시상식 도우미들이 화제다. 전국 90개 도시 100여개 대학교에서 신체조건과 정신자세를 엄격하게 따져 뽑은 뒤 40일간의 혹독한 훈련을 시킨 미인들이다. 만주족의 전통복장을 개량한 '치파오(旗袍)'를 입고 8등신 몸매를 뽐내는 통에 시상식장의 선수들이 당황하기 일쑤란다. 의전상 실수를 줄이고 관객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중국의 '부드러운 힘'을 과시하려는 저의도 일부 깔려 있는 모양이다. 역사에서 미녀를 내세운 계책에 해피엔딩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걸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