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계곡 산책하고 원효봉 둘러보니 氣가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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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재발견
미륵사 독성각 옆 바위엔
원효가 장군기 꽂은 흔적
화엄경 설파한 화엄벌 눈길
해운대 유람선관광 대신 범어사 원효암의 원효석대를 찾기로 갑자기 일정을 바꿨다. 부산 여행길에 안내를 맡은 장순복 대륙항공여행사 사장의 원효석대 예찬이 그만큼 매혹적이었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식견이 높은 그는 원효석대에 뭉친 기(氣)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원효석대에 한번 앉아보세요. 원효대사가 앉아 수행했던 자리랍니다. 온 세상이 발 아래 펼쳐지는 바로 이곳에서 금정산의 기가 한바퀴 휘돌아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원효암은 어디?초행길은 늘 실수 투성이다. 범어사 템플스테이 장소인 휴휴정사 옆의 이정표를 잘못 읽었다. 살짝 틀어져 있는 금정산성 북문과 원효암 방향 표지가 똑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착각했다. 바위 투성이 계곡에 놓인 좁은 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북문쪽 계곡길을 따라 올랐다.
길가 풍경은 장 사장이 설명해준 원효암 가는 길 그대로였다. 계곡의 바윗길엔 노란 은행잎이 수북하고,하늘에서 낙엽비가 흩날리는 풍경이 영화 속 한 장면인 듯싶었다. 1주일 전쯤 단풍이 다 떨어지지 않았을 때의 계곡 풍경은 과연 어땠을까. 금강암을 지나서까지도 풍경에 취해 길을 잘못 들어섰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안내표지판에 더 이상 원효암이란 글자가 보이지 않는데도 그랬다. 얼핏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았다. 원효암에 가기 위해서는 언제나처럼 내 안에서 잘못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금정산성 북문으로 향하는 바위 투성이 계곡길은 묘한 매력을 내뿜는다. 육산의 흙길과는 걷는 맛이 다르다. 양 옆에 로프를 쳐두지 않았더라면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40분쯤 후 북문을 마주한다. 북문은 범어사에서 1.6㎞,고당봉(801.5m)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오르는 잘록한 안부에 자리해 있다. 금정산성의 4개 문 중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고 한다. 북문 너머의 광장 세심정 일대도 넓다.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파한 곳이어서 화엄벌이라고도 한다.
◆원효봉에서 느낀 원효석대의 기
오른쪽 세심정 뒤로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이 보인다. 천신인 고모(姑母)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됐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동쪽 능선 허리에 금정산이란 산 이름과 범어사의 창건 내력을 알려주는 금샘(金井)이 있다. 고당봉으로 향하는 길에서 왼편으로 갈라지는 미륵사로 향한다. 원효대사가 왜적 5만명을 물리친 기적을 일으켰다는 작은 사찰이다. 원효대사는 미륵사의 가장 높은 바위에 신라 장군기를 꽂고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던 왜병을 유인한다. 장군기를 보고 올라온 첩자를 신통력으로 사로잡은 뒤 호리병을 손에 들려 살려보냈는데 적장이 이 호리병을 깨뜨리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독성각 옆 바위에는 원효대사가 신라 장군기를 꽂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독성각에 오르는 돌계단길 중간,석간수가 나오는 작은 샘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바위 구멍에서 쌀이 한톨씩 나와 이곳 스님의 끼니를 잇게 했다는 전설이다.
북문 세심정에서 물통을 채운 뒤 동문 방향으로 올라가면 원효봉(687m)이다. 의상봉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금정산성도 장관이다. 금정산성은 길이 18㎞의 국내 최대 산성.그 아래로 펼쳐지는 부산 시가지 풍경 또한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부산=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여행 TIP
부산은 맛기행 일정을 짜 돌아다녀도 괜찮은 곳이다. 동래파전이 유명하다. 밀가루 반죽에 파를 넣어 부치는 일반 파전과 달리 쌀가루 반죽에 홍합 조개 오징어 등 해산물을 넣고 달걀물을 풀어 얹는 게 특징이다. 동래읍성 주변에 파전가게가 많다. 북구 만덕2동의 뜰에장(051-513-1777)에서 동래파전을 비롯한 전통음식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유대감집(051-517-4004)의 오리불고기 등 산성마을의 오리,흑염소 요리도 좋다. 금정산성토산주(051-517-0202)의 금정산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면 좋겠다. 가야밀면(051-891-2483)의 밀면도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