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한도 채우고도 매달 100만원 적자

수도권 K의원의 수입ㆍ지출내역 살펴보니
의원 절반 낮은 인지도 탓에 후원금 한도 모채워
일부 의원 경비 아끼려 정책보좌관 지역구로 보내
검찰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불법로비 의혹 수사를 계기로 정치인들의 씀씀이에 관심이 쏠린다. 정치자금이 어디에 얼마나 지출되는지를 보면 정치인들이 왜 불법자금의 유혹에 빠지는지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다.

수도권 재선 K의원의 지난해 수입과 지출내역을 보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린다. K의원의 수입원은 두 갈래다. 우선 지지자들로부터 받는 후원금이다. K의원은 지난해 지지자들로부터 선거가 없는 해의 수령한도인 1억5000만원을 채웠다. 또 정부로부터 통칭 '세비'(수당과 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로 1억1800만원을,국회의원실 지원경비로 8919만원을 수령했다. 대략 3억57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는 셈이다.
◆지역구에 후원금 모두 들어가

K의원이 가장 많이 돈을 쓴 곳은 지역구 사무실(당협 사무실) 관리비였다. 사무실과 차를 임차 · 유지하고,상근 · 비상근 당직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각종 공과금을 내는 데 월 평균 1180만원,연 1억4160만원을 썼다. 정치 후원금의 대부분이 여기에 들어간 셈이다.

지역구 관리에도 별도의 '뭉터기' 돈이 들어갔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국회의원은 지역민들에게 부조나 축의금 등을 낼 수 없게 돼 있다. 그렇다고 입을 씻을 수도 없다. 조화나 화환을 보내는데 월 300만원 이상 돈이 들어갔다. 여기에 각종 향우회 동창회 협회 등에서 자리를 맡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돈들은 모두 개인 돈,즉 세비로 충당된다. 중앙무대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쓰는 접대비와 품위 유지비(골프비용 등)로도 솔솔찮게 돈이 나갔다. K의원 측은 "씀씀이를 최대한 줄였는데도 마이너스가 됐다"고 했다. 1000만원 적자 선에서 선방했다는 게 K의원실의 평가다. 이런 적자는 의원 개인 재산에서 메워졌다.

◆절반 정도만 후원금 한도 채워

그래도 K의원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정관계와 재계,법조계 등에 넓은 인맥이 있어 후원금을 다 채웠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지난해 후원회를 운영한 290명의 의원 중 159명만 한도를 채웠다. 절반가량은 낮은 인지도로 한도를 채우지 못했다. 일부 지방 초선 의원들은 후원금 모집이 안 돼 적잖은 고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가친척은 물론 비서진까지 총동원돼 정치자금 마련에 나선다. 일부 회계담당 보좌관들은 자금모집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스스로 짐을 싸는 경우도 있다는 전문이다. 자금모집이 여의치 않으면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대외활동을 줄이거나,'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대구의 한 3선 의원은 "큰 욕심만 안부리면 수입 한도 내에서 대충 지역구 관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구민을 만나는 횟수나 단체 활동을 확 줄이는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 의원들도 적지 않아

지역구 관리를 강화해야 하는데 후원금이 안 들어오면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우선 9명의 비서진(인턴 2명 포함) 중 많게는 3~4명을 지역구로 내려 보낸다. 정부가 월급을 주기 때문에 이들을 지역구로 내려 보내면 그만큼 지역사무실 관리비가 줄게 된다. 또 정책개발 비용과 대외 판공비도 줄여 그 자금으로 표심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고정비용을 아무리 줄여도 지출을 충당할 수 없을 땐 개인 재산을 털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럴 때 불법자금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

한 중진 의원은 "선거가 없는 평년에는 검은 돈을 안 받아도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선거가 있거나 중앙당에서 선출직으로 나서겠다고 하는 순간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흔적이 남지 않는 뒷돈에 대한 유혹이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된다는 것이다.

다른 재선 의원은 "정치인의 모든 행위에는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돈이 모자라면 당연히 검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라며 "정치인은 365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수진/박신영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