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랑의 열매

'우리 아이 첫 기부' 캠페인에 참여해 돌잔치 축하금을 전액 기부한 젊은 부부는 소중한 기회를 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나눔이 이렇게 뿌듯할 줄은 몰랐다면서 앞으로 더 많이 도우며 살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1억원 이상 기부자들의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여성벤처사업가는 나눔의 선순환에 앞장서겠다며 공동모금회 홍보대사나 된 것처럼 기업인을 만날 때마다 가입을 권유한다고 했다. 공동모금회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사연들이다.

대학생들은 열정과 사랑을 담은 나눔씨앗이 되기 위해 축제기간 중 '캠퍼스 나눔 도전'을 펼쳤고,박지성 이청용 등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유니폼 축구화 등을 자선경매에 내놓았다. 교통카드를 이용한 '사랑의 열매' 모금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시내버스를 탈 때처럼 자선냄비 단말기에 카드를 대 1000원 안팎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누가 알아줘서가 아닌,그야말로 익명의 나눔 실천이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성금은 2008년 2703억원,지난해에는 3318억원에 달했다. 그 소중한 성금을 공동모금회 임직원들이 엉뚱한 곳에 함부로 써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성금액이 줄어들고 있고 기부 약속을 취소하는 사례도 수천건이라고 한다.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발적 기부문화를 고양한다는 취지에서 출범한 공동모금회의 이미지도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푼돈을 아껴 성금을 낸 국민들로선 기가 콱 막힐 일이다.

문제는 성금 감소의 피해가 고스란히 불우이웃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모금이 집중되는 연말 실적이 뚝 떨어지면 그 여파가 내년까지 미칠 것이다. 이는 기댈 곳 없는 이웃들이 살아갈 길이 더 막막해진다는 뜻이다. 더구나 추위까지 다가오고 있다. 공동모금회의 행실은 밉지만 모금 자체가 줄어들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사랑의 열매'에서 3개의 열매는 나,가족,이웃을 상징한다. 열매의 빨간색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하나로 모아진 줄기는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공동모금회의 비리로 속은 터지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시들어서는 안될 일이다. 에디슨도 '나눔은 마음의 미덕일 뿐 손의 미덕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 마음의 미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