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前 국내 첫 금형학과…제자만 21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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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금형인' 류제구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현대자동차,삼성전자 등 세계 일류 기업이 나온 것은 일류 금형이 있기 때문입니다. "
류제구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66 · 사진)는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형이 우수해야 부품의 정밀도가 높고 수명도 늘어난다. 가격과 품질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뿌리인 금형부터 강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74년부터 인하공업전문대에서 금형과목을 가르쳐 금형인 2100여명을 길러낸 금형계의 원로.1984년엔 국내 최초로 경기공업개방대(현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금형만을 가르치는 금형학과를 개설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이 시상하는 '제14회 올해의 금형인'에 선정됐다.
류 교수는 "붕어빵을 굽기 위해 붕어 모양의 틀이 있어야 하듯이 동일 규격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각각의 금형이 필요하다"며 "생활 속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금형으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쿠스 리무진에 들어가는 부품이 3만5000여개,쏘나타의 부품이 2만5000여개에 이른다"며 "에쿠스,쏘나타 등이 일류 자동차로 인정받는 것은 각각의 부품을 만드는 국내 금형업체들의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68년 인하대 기계학과를 졸업하고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하면서 처음으로 금형이라는 단어를 알았다"며 "금형 기술이 없어 망치로 철을 두드려 자동차를 만들던 국가가 30년 만에 이렇게 훌륭한 금형기술을 갖추게 될지 누가 알았겠냐"고 덧붙였다. 그는 1972년 전역 이후 인하공업전문대 자동차학과 강사로 부임한 뒤 금형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기술을 배울 방안이 없어 유럽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을 견학하며 기술을 익혔다. 그는 "공장을 견학한 후 밤마다 함께 간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사출구멍이 오른쪽에 있었는지,왼쪽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가며 퍼즐을 짜맞췄다"며 "이런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150년 역사의 일본 금형기술,400년 역사의 독일 금형기술을 우리 금형업자들은 30년 만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금형기술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데는 체계적인 교육의 힘도 컸다. 그는 "금형설계와 제작,정비 기술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한국뿐"이라며 "현재 9개 공업고등학교,8개 전문대,3개 4년제 대학,4개 폴리텍 등 총 26곳에서 연 2000여명의 금형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간 도제식으로 금형기술을 전수하던 일본,독일도 뒤늦게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며 "최근엔 일본이 우리를 벤치마킹해 대학원 과정을 개설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산업계를 향해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도요타자동차의 하도급업체인 이토제작소가 20여개의 금형공정을 5개로 줄여 자동차 부품원가를 6분의 1로 줄이자 도요타는 이사급 임원을 총동원해 이 작은 회사에 찾아가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대기업들은 아직까지 금형업체를 파트너로 보지 않고 금형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자꾸 가격이 싼 곳으로 하도급업체를 바꾸기 때문에 '금형쟁이'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금형업계가 인정을 받아야 우수한 금형 인력들이 들어오고 초정밀 금형 등 특수금형 기술이 발전한다"고 덧붙였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