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해안포, 연평도 포격] "軍부대 이어 면사무소에도 '쾅'…50년 살면서 이런 공포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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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수라장 된 연평도
민가 20여채 불타고 곳곳 산불…마을이 불바다
주민들 방공호 대피…전기공급 중단·통신 두절
"출항 금지됐지만 일단 떠나자" 어선타고 탈출
"마을이 불바다가 됐어요. 100m 간격으로 포탄이 떨어졌어요. 검은 연기가 꽉 차고 전기도 끊겼습니다. "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연평도 주민 1700여명은 23일 북한의 포격을 받아 민가가 불타는 '실제 상황'이 발생하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연평도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왔다는 섬 주민 이종식씨(50 · 어업)는 "우리 군이 훈련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훈련 1시간 뒤쯤 쾅쾅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나와보니 불이 나 있었다"며 "'훈련이 아니고 실제상황이니 대피하라'는 방송을 듣고 대피소로 다급히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전쟁이 터져 배 타고 섬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아우성"이라며 "마을에 새카만 연기가 자욱해 사람이 왔다갔다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포격 당시 부두에 서 있었다는 주민 신일근씨(40 · 선박업)는 "포탄이 두 발 떨어졌는데 부두를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 살았지 안그랬으면 다 죽을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씨는 "지금 연평도 사람들은 모두 '언제 또 포탄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고 육지로 대피하고 싶어한다"며 "하지만 주민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피난선이 들어오지 않고 있어 답답해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북한의 도발 징후를 사전에 전혀 느끼지 못해 충격이 더욱 컸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민은 "함포소리가 나서 훈련을 하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갑자기 민가에서 폭발음이 났다"며 "이후 마을에 20발이 연속해 떨어졌고 우리 군이 대응사격을 한 뒤 또 다시 20~30발이 잇달아 떨어져 불바다가 됐다"고 밝혔다.
남편과 함께 연평도 해병부대에 근무 중인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한미순씨(52 · 여)는 "민박집 승합차로 부두에 가는데 갑자기 차 위로 굉음을 내며 포탄이 날아가 급하게 차에서 내려 밑으로 엎드렸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주민들은 이날 마을에 100여 발의 포탄이 쏟아졌으며 우리 군도 간간이 대응사격을 했다고 전했다. 면사무소에서는 오후 4시가 넘어서도 계속 대피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김운한 인천해경 연평출장소장은 "산과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연기로 휩싸였다"며 "주민 모두 대피소로 피신해 누가 불을 끄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 50여명과 함께 군부대 진지로 피한 박철훈씨(54)는 "어머니가 인천에 나가셔야 하고 짐도 부칠 게 있어 부두에 나갔는데 여객선 접안과 동시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민들은 포격 직후 섬 안에 설치된 대피소로 분산 이동했다. 학교에서도 수업을 중단하고 학생,교직원,인근 주민들이 피신했다. 주택 수십채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미처 대피소로 이동하지 못한 일부 주민들은 산 밑으로 급하게 몸을 숨기기도 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상당수 주민들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 주민 이모씨는 "바닷가에 굴을 따러 나갔던 어머니와 전화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며 "지금도 대피소 주민들과 통화하며 어머니를 찾고 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평도에서 꽃게잡이를 하는 김민학씨는 잠시 섬을 비운 사이 포격 사건이 터졌고 아내와 연락이 닿지 않아 하루종일 아무 일도 못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전남 완도에서 새로 건조한 배를 인도받아 연평도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일이 터졌다"며 "아내와 이웃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애를 태웠다. 그는 "우리 앞뒷집 세 곳에 포탄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아내가 안전하게 대피소로 피신했는지 알 길이 없다"며 눈물을 쏟았다.
일부 연평도 주민들은 인천으로 대피하기 위해 부두로 빠져나와 배를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3시에는 215명을 태운 여객선이 연평도를 출항,5시10분께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오후 6시에는 두 번째 배가 주민들을 태우지 않은 채 섬을 빠져나오려다 거센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해상에서 조업 중이거나 정박 중이던 어선 16척도 주민 289명을 태우고 연평도를 떠났지만 이들 어선과 무전이 끊겨 해양경찰이 소재파악에 애를 먹었다. 어선 및 여객선 출항이 금지돼 출항할 때 해양경찰청에 신고해야 하지만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무작정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옹진군 관계자는 "어선 출항이 금지됐지만 주민들이 북한의 폭격이 계속될지 몰라 불안해서 일단 연평도를 떠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8시30분에는 일부 주민을 태우고 연평도를 떠난 배가 인천항에 도착했다. 오후 9시께는 인천 남항에서 식량,구급약 등 긴급구호물품과 소방차 21대,소방관 100명을 실은 배가 연평도로 향했다.
소연평도에 사는 박재환씨(55)는 "소연평도는 괜찮다"며 그래도 혹시 몰라 주민 중 젊은 사람들은 방공호에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은 산을 넘어 인근 해수욕장으로 피신해 있다"고 말했다.
대피소를 포함한 섬 곳곳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고 통신도 끊겨 섬에 남아있는주민들은 고립 상태에 빠졌다. 주민들은 촛불을 켜고 어둠과 추위를 견뎌야 했다. 한 주민은 "대피소 조차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방한용품 등도 부족하다"며 "하루라도 빨리 육지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인천=김인완 · 임도원/임현우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