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산전, 전기車 부품·스마트 그리드에 '미래' 걸었다

'그린 비즈니스' 영토 확장
내년까지 1400억 이상 투자…장기 성장동력 확보 발판
'스몰 M&A' 강자
과감한 인수·합병으로 시너지…주력 外 사업은 떼어내

"자동차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전력기기를 40년 이상 다뤄온 전문회사다. 전기라면 자신이 있다. "

지난 6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있는 GM(제너럴 모터스) 본사.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장부품 납품의 운명이 갈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구자균 LS산전 부회장(53)은 GM 구매담당 부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도 모르면서 차 부품을 어떻게 하겠느냐'란 면박이 돌아오지 않을까 내심 마음을 졸였다. GM 측 관계자들이 웅성거렸다. 곧이어 GM 측 사람들이 악수를 청해왔다. "잘 해봅시다. " 40여년간 전력기기 시장을 다져온 LS산전의 첫 전기차 부품사업 진출은 그렇게 이뤄졌다.

◆세계 전기차 부품 시장에 도전


LS산전은 1974년 세워진 전력기기 회사다. 일반인들에겐 익숙지 않은 개폐기 차단기 등의 전력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저압부터 고압,초고압까지 전력기기 관련 제품은 모두 만드는 이 회사의 연간 매출은 1조4000억원대에 달한다. 전기자동차 부품사업에 눈을 돌린 것은 2008년.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인 구 부회장이 LS산전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면서였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그만두고 LS산전에 입사한 지 3년여 만에 회사 경영을 맡은 구 부회장은 '사업구조 재편'이란 목표를 세웠다. 전력기기 시장점유율이 60%에 육박했지만,장기 성장의 비전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신사업 확보를 위해 사업보고서를 들여다보던 그가 발견한 것은 연구소의 수행과제.1993년 국책과제로 진행한 전기자동차용 부품 개발이었다. 구 부회장은 "산업용 인버터를 변형해 전기차 배터리에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하는 EV릴레이와 인버터 등 부품 기술을 개발하게 될 줄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고 말했다.

GM의 1차 협력사가 된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1000억원 규모의 샘플을 수주한 데 이어 굵직한 세계 각지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부품 샘플을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구 부회장은 "자동차 전장부품은 LS산전의 미래를 이끌어갈 '기회의 창'"이라며 "미국 타이코,일본 파나소닉을 누르고 세계 시장을 석권해 향후 3년간 1조원가량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몰 M&A(인수 · 합병)'로 신사업 확보

LS산전은 전기차 부품 사업과 함께 소규모 투자 자금으로 신사업의 기틀을 확보하는 '스몰 M&A'에 나섰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았다. 작지만 LS산전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기업들을 골라 인수하기로 했다. 2008년 11월 전력선 통신업체인 플레넷을 인수하며 첫 M&A에 성공했다. 이후 자동화시스템 업체인 메트로닉스(LS메카피온 · 2009년),중국 전력기기 업체 호개전기(2010년)를 사들였다. 독일 반도체 회사인 인피니언과 전력용 반도체 회사인 LS파워세미텍(2009년)을,빌딩 솔루션 회사인 스위스 사우타와는 LS사우타(2009년)를 빠른 속도로 합작 설립하며 외연을 넓혀나갔다. 일부 사업은 따로 떼내기도 했다. 지난 4월 금속사업 부문을 분할해 LS메탈을 세웠다. 동관과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생산하는 LS메탈은 LS산전의 주력사업인 전력기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굴뚝에서 융 · 복합으로…스마트 그리드


LS산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다. 현재 전력기술에 정보기술(IT)의 힘을 더한 융 · 복합산업을 뜻하는 말로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하도록 하는 데 맞춰져 있다. 예컨대 스마트 그리드 시대가 열리면 전기요금이 싼 심야시간대에 세탁기를 돌리고 전기차를 충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태양열과 풍력,지열을 사용해 TV를 켜고 남는 에너지는 되팔 수도 있다.

LS산전은 M&A를 통해 확보한 신사업과 전력기기 사업을 한번에 꿸 수 있는 흐름이 스마트 그리드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반년에 한 개꼴로 새 회사를 세우거나 M&A를 성사시킨 데는 나름의 일관된 목표와 흐름이 있었다는 얘기다.

LS산전은 지난 2년간의 노력으로 에너지 생산(태양광발전)-전달 및 저장(전력 손실을 낮춰주는 초전도 기술,빌딩 에너지 솔루션,연료전지)-사용(전기차용 전장부품과 LED조명)에 이르는 사업군(群)을 모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는 에너지를 다루는 데는 정통한 기업"이라며 "앞으로 그린 비즈니스 연구 · 개발(R&D) 등에 내년까지 1400억원 이상을 투자해 2015년까지 매출 2조1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시장 집중 공략


지난 4월 중국 배전업체인 호개전기를 인수한 뒤 LS산전 임직원 사이에선 중국어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시장 매출을 100% 늘리겠다는 목표도 정했다. 내년께 중국에서만 20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기로 했다. 현지화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고압 · 저압 전력기기는 세계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품질면에선 뒤처지지 않는데,중국 시장에서 안 팔리는 이유를 따져본 뒤 내린 결론이다. 구 부회장은 "현대자동차,LG전자,삼성전자가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보면 현지기업처럼 움직인다"며 "LS산전도 중국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글로벌 회사로 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