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기 뒤 빛나는 ASEAN 시장

요즘 싱가포르 공무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흥미로운 것이 내년에 받게 될 상여금에 대한 기대감이다. 어느 나라든 공무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는 있지만 싱가포르의 경우는 특이하다. 바로 'GDP 보너스'라는 것인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따라 공무원의 보너스가 결정되는 것이다. 마침 올해 두 자릿수 경제성장이 기대되는 싱가포르이다 보니 공무원들은 빠른 경제회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두둑한 보너스 기대에 차 있다.

한국처럼 천연자원이 없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싱가포르는 금융위기의 여파가 어느 나라보다 컸지만 신성장동력인 바이오산업과 관광서비스 분야의 약진에 힘입어 올해 사상 초유의 13% 이상 경제성장을 낙관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대인 나라에서 중국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아가 싱가포르 정부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10년 후 지금보다 소득을 33% 이상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웃나라 말레이시아도 약속이라도 한듯 생산성 향상을 위한 미래 로드맵을 내놓았고,베트남 인도네시아 및 태국 등도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어 향후 소득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 각국이 자국 통화의 가치하락을 유도하는 와중에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태국 등 동남아국가연합(ASEAN) 통화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ASEAN 각국의 경제성장과 통화강세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구매력을 키우고 소비시장의 폭발적인 증가로 연결될 것이다. 하지만 ASEAN은 아직 생산시설이 부족해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 기업들이 ASEAN 시장을 새롭게 주목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수출 모델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도 총인구 5억8000만명,GDP 규모 1조5000억달러에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거대경제권 ASEAN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올해 우리 수출액의 42%가 중국 미국 일본에 편중돼 있어 시장다변화가 급선무다. 잠재력이 큰 ASEAN이 우선적인 협력파트너로 손꼽힌다. 실제로 올 10월까지 대ASEAN 수출은 424억달러로 전년보다 33%나 늘어 전체 수출 증가율을 앞지른 것은 고무적 현상이다. ASEAN에 대한 접근방식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우리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하면서 이곳의 풍부한 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상생협력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제 ASEAN은 더 이상 여행 대상지로서만 관심을 가질 곳이 아니다. 성공적으로 개최한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로 업그레이드된 국격을 토대로 ASEAN에서 새로운 부가가치와 상생협력의 파트너십을 찾아야 할 때다.

이창선 < 한국무역협회 싱가포르지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