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파워 블로그, 블로그 파워

인터넷서 수십년前 자료 구해
개인 일상도 남에겐 귀한 자료
500년 산 여자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지난 500년 동안의 자료를 모으는 일이었다. 500년 전이라,그 시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외국 선교사들이 찍은 우리의 모습이란 오래됐다고 해야 고작 100여년 전의 일일 뿐이었다. 500년 앞에선 10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도 어쩔 수 없이 '고작' 취급을 받는다.

고작 100년이 흘렀을 뿐인데 광화문 모습도 천양지차다. 스카이라인을 망치는 고층 건물들 없이 야트막한 집들 위로 하늘이 전부다. 왕복 10차선 세종로 자리엔 조금 넓은 듯 굽은 길이 나 있고 길은 법을 어기고 지은 집들로 들쭉날쭉이다. 청계천의 모습은 또 어떤가. 100년 전의 모습도 이미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니 500년 전이란 아예 빈 도화지일 뿐이었다. 자료는 너무도 방대했다. 취사 선택의 기준도 가지지 못한 문외한이라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일반 독자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사서들부터 찾았다. '하루 만에'나 '한권으로 읽는'으로 시작되는 책들은 한 시대를 비교적 간명하게 정리해 읽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세세한 자료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역사에 흔적조차 남지 않은 비천한 여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생활사에 대해 알고자 비교적 얇은 책인 '동국세시기'를 골라 읽었다. 일 년 열두 달,윤달에 대한 기록까지 상세해 흐릿한 어둠 속에서 비로소 한 여자의 얼굴 윤곽이 조금씩 떠올랐다. 운좋게도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이란 책을 만났다. 그 책에서 너무도 곤궁해 스스로를 노비로 파는 자매(自賣)를 비롯 노비들의 생활에 대해 알게 됐다. 이야기는 점점 구체적으로 흘러갔다.

정작 문제는 사진과 기록으로 남아 있는 비교적 최근의 일을 쓰면서 생겼다. 1943년 일제강점기 시대 이야기였다. 짧은 에피소드를 쓰려고 준비해둔 책이 열 권이 넘었다. 그런데도 그 책들 다 놔두고 어느샌가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무대인 부산의 당시 모습을 알고 싶었다. 부산역은 어디에 있었고 풍경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다행히 한 블로거의 그 시절 추억담이 큰 도움이 됐다. 그 당시 10대 초반이었을 그는 그 시절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43년 부산역 앞을 지나가는 여자 주인공에게 비로소 이름이 생겼다. 블로거에게 신세를 졌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블로거들에게 친밀감을 느꼈던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하니 환경도 부쩍 바뀌어 있었다. 시시때때로 블로거들의 독후감이 떴다. 쓴소리가 싫었던 건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블로거의 의견을 마치 자신의 의견인 양 떠옮기고 있는 블로거들이었다. 이것이 블로그의 장점이라는 광대한 커뮤니티 형성인가,황망히 나오면서 씁쓸하고 무서웠다.

이제 웬만한 이들이라면 블로그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하느냐에 따라 파워 블로그가 되기도 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저런 이유로 이웃의 블로그를 방문한다. 이렇게 사적인 것을 밝혀도 괜찮을까,혹시나 악용하는 이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역시 희망은 블로그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소하고 사소할 수 있는 한 개인의 일상이,다음 세대 한 개인에게는 귀중한 자료의 보고가 될 수 있다.

500년 산 여자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건 완전히 이 한 줄의 문장 때문이었다. "달빛 아래 백골들이 흰꽃처럼 피어올랐다. " 조선 중기의 문신 윤계선의 고전소설 '달천몽유록'의 한 문장이다. 이것을 알게 된 곳도 역시 블로그였다. 이 귀중한 한 줄처럼 어쩌면 당신의 블로그에 남겨진 한 문장이 수백 년 뒤 한 작가의 가슴을 설레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이 블로그의 파워다.

하성란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