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도발] 찜질방서 1천여명 무료 숙식…"정부에선 뭘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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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안부두 앞 '인스파월드'"섬에서 정신없이 몸만 빠져나와 이곳에 왔어요. 처음엔 정부가 마련해준 장소인 줄 알았어요. 다음 날에야 이곳 사장님이 오갈 데 없는 우리를 받아준 걸 알고 어찌나 고맙던지…."
"지금까지 비용 1억, 운영 한계…정부·지자체 지원 전혀 없어"
인천시 신흥동 연안부두 입구에 있는 찜질방 ㈜인스파월드에서 엿새째 머물고 있는 신일근씨(40 · 연평도 남부리)는 28일 찜질방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연평도에서 꽃게 유통업을 해온 신씨는 "준전시 상황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을 개인사업자가 자원봉사 차원에서 대신해줘 모두가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인스파월드는 지난 23일 북한의 연평도 공격 직후 섬을 빠져나온 연평도 주민 1000여명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면서 전국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인스파월드는 포격 당일 연평도 주민을 위한 유일한 피난처가 됐다. 연평도 주민들이 피난 나올 것을 감지한 서기숙 인스파월드 대표(50 · 사진)는 찜질방을 임시거처로 무료 제공키로 마음 먹었다. 서 대표는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의 인스파월드 내 찜질(복) · 사우나,피트니스,수영장 등 모든 시설을 연평도 주민을 위해 무료로 개방했다. 연평도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과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도 별도로 마련해줬다. 닷새째 머물고 있는 유경숙씨(52 · 연평군 남부리)는 "노약자와 환자들을 위해 난방 온도를 평소보다 높게 올려줬다"며 "몸과 마음이 지친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줬다"고 고마워 했다.
인스파월드는 처음엔 직원 40여명이 주민들의 안전 관리와 편의 제공을 위해 하루 2교대로 24시간 근무했다. 그러나 연평도 긴장 고조로 떠나온 주민이 급격히 늘어나 한계에 직면했다. 찜질방 측은 즉각 아르바이트 직원 10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인스파월드 측에 따르면 하루 평균 이곳을 거처로 이용하는 피난민은 1000여명.평소 하루 100만원 미만이던 난방비(가스사용료)가 200만원 이상 들고 물값,관리비 등을 포함해 하루 평균 1000여만원의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비용 급증으로 인스파월드는 임시거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8일 현재 운영비가 거의 바닥나 주민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데 한계에 처했다. 박준호 인스파월드 총괄이사는 "당초 100여명 정도 피난 올 것으로 예상했고 2~3일 지나면 정부나 지자체가 임시 숙소 마련 등 대책을 내놓을 줄 알았다"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젠 운영비도 바닥이 난 상태여서 당장 오늘부터 무료 식사 제공이 어렵게 돼 답답하기만 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취재 결과 인도적인 차원에서 1000여명의 피난민에게 숙식을 제공해온 인스파월드 측에 중앙정부는 물론 인천시와 옹진군청은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외부 지원이래야 적십자회 자원봉사자 10여명의 식사 배식 봉사와 개인들이 제공한 김치가 전부다.
인스파월드 측은 피난민 임시거처 운영으로 찜질사우나 이용 회원 1500명과 일반 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못하고 있어 지금까지 약 1억여원의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이사는 "실비 지원만 해주면 임시거처로 계속 운영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경기도 부평공단에서 휴대폰 부품 제조회사를 운영했던 기업인이다. 2004년 인스파월드를 인수한 서 대표는 평소에도 불우이웃 돕기 등 봉사활동에 앞장서왔다. 장애인들을 위해 인스파월드 수영장 등을 무료 제공하는 등 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독거노인,불우학생 등 불우이웃에게 찜질사우나를 무료 개방하고 있다. 서 대표는 동남아 출장 중이다. 신일근씨는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중에 꽃게 선물이라도 해야 한다고 우리끼리 의견 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인천=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