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내 한계 넘어선 北 도발

긴장 극대화로 외압 분산 시도
채찍·당근 병행해 의도 차단을
급변사태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로 취약해 보였던 북한이 정규 무력을 동원한 도발을 감행했다. 연평도 포격의 배경으로는 정전협정과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및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후계자 김정은의 업적 쌓기와 긴장조성을 통한 내부 결속,남측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위한 위기 조성 등을 꼽을 수 있다.

후계구축 과정에서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것은 후계자 업적 쌓기 차원의 김정은 주도의 도발 가능성이다. 이 경우는 김정일의 승인 아래 선군정치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도발을 감행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김정은 공동정권이 핵무기 보유에 이어 재래식 무기의 위력까지 갖췄다고 착각하고 여러 형태의 무리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선제도발을 감행한 또 다른 자신감은 남측이 전면전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장사정포와 방사포의 사정권에 있는 수도권을 인질로 잡고 남한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나쁜 능력'을 확신하고 도발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경제난과 남북간 전력격차,한 · 미동맹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비대칭전력을 활용한 기습과 해상충돌의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봤지만,정규 무력을 동원한 공공연한 도발은 어렵다고 본 것이 사실이다. 이번 도발은 우리의 이러한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연평도 도발은 외부압력에 대응한 압력조절 차원의 포격일 수도 있다. 한 · 미 양국은 외부압력을 높여야 북한이 변하든지,폭발할 수 있다고 보고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여왔다. 북한은 외부압력을 연평도로 발산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준전시상태'로 몰고 가고,이를 국면전환의 계기로 삼아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북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도 대량보복을 하지 못한 남측은 한 · 미연합훈련으로 무력시위를 하면서 분을 삭여야 할 궁색한 형편이다. 피격 직후 '확전방지'에 방점을 찍은 것은 전면전이 가져올 가공할 만한 피해와 파장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같이 죽자고 나오면 북보다 잃을 것이 훨씬 많은 우리가 움찔할 수밖에 없다. 주요 20개국(G20) 회의 개최를 통해 쌓아온 국가이미지가 한 순간에 훼손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의 최우선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불량국가' 북한을 비난하고,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탓하면서 시간을 보낼 순 없다.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에서 보듯이 북한의 핵능력은 향상되고,재래식 전력도 만만치 않음이 확인됐다. 지속되고 있는 국지분쟁이 핵문제 해결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 도발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미 · 중 갈등과 한 · 중 갈등을 촉발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전격 방한해 확전을 방지하고 연평도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이번 사태가 동북아 공동번영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인 북한을 다루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최고지도자들이 만나서 담판하는 것이다. 주체 · 자주에 입각한 국가정체성을 확립한 북한에 대해 외부 힘을 빌려서 압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북한은 전통적 우방인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면서까지 제 갈길을 가는 '제멋대로인' 나라다. 그래도 채찍과 당근을 같이 쓰면서 지도자와 담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당근을 쓰지 않으면 채찍의 효과도 보기 어렵다. 한반도 정세는 '기다리는 전략'과 '전략적 인내'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대국면에 접어들었다.

고유환 < 동국대 교수·북한학 /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방문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