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통터치'] "짐 지워 미안하다" "아버지가 옳았어요"…父子 경영인, 벽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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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중기청 주최, 중기중앙회·기업은행 주관"일도 힘들고 회사 규모도 작고….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하창화 한국백신 회장)
1박2일 '솔직토크'…가슴 속 이야기 나누며 '소통'
1,2세 경영인 '성공 가업' 다짐
아버지 하창화 회장은 "그동안 일만 부려먹었지 아들한테 신경 써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43년째 예방의약품 및 의료용구를 만들어온 뚝심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들 하성배 이사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 이사도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며 일해온 것이 새삼 죄송스럽다"며 그동안 가슴에 묻어둔 심정을 전했다. 한국경제신문과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중소기업중앙회와 기업은행이 주관한 '가업승계,아름다운 바통터치' 행사가 26,27일 이틀간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1,2세대 기업인 200여명은 부자 간,모자 간,부녀 간,모녀 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천년기업으로 성장시키자"고 입을 모았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1,2세대가 머리를 맞대고 한자리에서 '성공 가업'을 이어가기 위한 소통을 나눈 뜻깊은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소통이 마음의 문 열어
1,2세대가 한 무대에 올라 방송인 이상벽씨의 사회로 진행된 '1,2세대 간 소통 패널 대담'은 참가자들의 공감대를 자아냈다. 이종화 유명사 대표(59)와 이구 차장(31),한영수 한영넉스 회장(63)과 한상민 사장(35),하창화 한국백신 회장과 하성배 이사 부자(父子) 등 10여명의 1,2세대 중소기업인들이 패널로 참여해 설문조사 내용을 중심으로 세대 간 갈등 및 화해 과정을 풀어나갔다. 3대째 전통옹기를 제조하고 있는 황충길 대표(68)는 "1996년 막내 아들이 대를 잇겠다고 해 대견스러웠지만 함께 일을 하다보니 서툰 면이 눈에 자꾸 띄어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나무랐다"며 "그때 아들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고 미안해했다. 2세 기업인인 고재훈 삼화실업 사장(42)은 "가업을 잇기까지 두어 차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2세들이 결과물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업승계 이전에 1,2세대가 충분한 소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창화 회장은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회사에서 일하다보면 서로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미령 훼미리 부장은 "나는 목숨 걸고 일하는데 아버지는 매번 지적만 한다"며 "아버지 세대가 2세들을 더 많이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실패 두려워 말아야2세 경영인으로 가업승계기업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강상훈 동양종합식품 대표(46)는 "아버지는 '품 안의 자식'으로 여겨 자신과 똑같은 틀에서 회사를 경영하기를 바란다"며 "실패하더라도 자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화 유명사 대표는 "아들한테 일을 맡겼더니 자꾸 직원들이 퇴사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얼마 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고 직접 부딪히면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한영수 한영넉스 회장은 "솔직히 '공장 한 곳을 문닫아도 좋다'는 심정으로 아들을 믿고 맡겼더니 적자 공장을 흑자로 전환시켰다"며 "무엇보다 믿음을 갖고 직접 경험하도록 해주는 게 가장 좋은 소통방법인 것 같다"고 소개했다.
패널로 참가한 공문선 커뮤니케이션클리닉 원장은 "가업승계를 100m 달리기와 비교하면 지금까지 아버지 혼자의 힘으로 70m를 달려왔다면 나머지는 아들 힘을 보태 100m를 완주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알게 된 아버지의 습관이날 함께 열린 '세대공감 커뮤니케이션' 행사는 다양한 게임을 통해 1,2세대가 소통을 공유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찾는 자리가 됐다. 양형준 우드미 대리는 "아버지가 평소 말씀 중에 손동작이 많다는 것을 게임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며 "앞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 대화가 수월하도록 손동작을 자주 해야겠다"며 겸연쩍어했다. 모자(母子)가 함께 참석한 장성숙 우신피그먼트 대표와 김주만 사원은 게임 내내 친밀감 넘치는 행동을 보여줘 주변으로부터 큰 부러움을 샀다. 김주만 사원은 "어머니가 23세의 젊은 나이에 창업해 33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것을 보고 항상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어머니의 기업가 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통해 "가업승계는 아버지의 일을 대신 '맡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며 "가족의 틀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간에 소통이 이뤄져야 가업승계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심은지/이계주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