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가면의 인격과 청소부의 영격(靈格)

10여 년 전 일본 나고야 공항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한 지인이 공항 청소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공항 대합실을 먼저 비로 깨끗이 쓸고, 비눗물로 닦은 다음 선풍기를 이용하여 물기를 말렸다. 그리고 다시 비질을 한다. 비질을 또 다시 하는 이유는 청소하는 동안 내려앉은 먼지를 씻어내기 위한 것이다. 마른 먼지까지 말끔하게 씻어낸 뒤에야 비로소 청소를 끝낸다. 비록 더러움을 지우는 청소지만 그들의 자세만큼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그 모습을 본 지인이 말하기를 ‘그들은 마치 수행하는 자의 모습이었다.’라고 했다. 하찮은 청소부일지라도 그들이 지닌 영격(靈格)은 고승(高僧)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고.

‘성자가 된 청소부’를 연상하게 하는 그들을 보면 사람의 인격은 돈이나 직업의 귀천과는 아무 상관없음을 알 수 있다. 돈 많은 부자라고 해서 인격이 높은 게 아니듯이 직업이 천하다고 인격마저 낮은 게 아니다. 직업의 귀천과 배움의 높고 낮음, 그리고 돈의 많고 적음과 같은 세속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한 청소부는 ‘성자’는 아니더라도 인격 외에 영격(靈格)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인격은 내면의 품성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자연스레 느껴지는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진 인간의 향기와도 같은 것이 인격이다. 하지만 요즘은 소위 처세술이라 해서 인위적으로 보여 지는 인격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해서라도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 가면 뒤에 숨겨진 본성을 알지 못하면 자칫 큰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한때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류변호사가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외모와, 가진 자가 아닌 서민의 편에서 똑 부러진 법률해석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 그녀가 사기혐의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승소를 장담하여 사건을 의뢰하였더니 변론기일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변론에다 비용도 반환하지 않아 의뢰인이 그녀를 고소한 것이다. 다들 참한 인상과 서민적 인격을 지녔다고 칭찬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과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돈 거래를 하거나 힘든 일을 함께 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인내의 한계가 오면 가면을 벗고 본 모습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즉 가식적인 이성은 사라지고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선사업을 내세우면서도 그 대가를 확실히 챙기는 사람이 있고 부자이면서도 기부에 인색한 사람이 있다. 인격이 부실하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신의 품위유지를 위해 부단히 관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영격은 수양을 통해 얻어지므로 인격과 달리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세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기만족, 자기행복을 위해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청소와 같은 하찮은 일이라도 오직 한 마음으로 그리고 진실 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움직이는 마음이 있으면서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격이 바로 그러하며 영격이 그런 것이다. 좋은 모습만 크게 보여주려는 고상한 인격보다, 작은 일이라도 마음에서 우러나 행하는 자세, 그것이 진정한 인격이고 영격이다.

인생의 목적을 영혼의 성숙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인격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눈을 감으면 인격은 보이지 않아도 영격은 어둠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영격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능력이다. 자신의 위치를 아는 자만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할 수 있는 자만이 영혼의 진화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hooam.com/whoim.kr)

☞ 차길진 칼럼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