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은행 '안정성' 보험 '장기투자' 증권 '고수익'

퇴직연금 시장은 현재 은행과 보험,증권사 간 치열한 주도권 쟁탈 3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적인 판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은행,고수익 · 고금리를 앞세운 증권사,기존 퇴직보험 상품 운용에서 쌓아놓은 업력을 내세우는 보험사가 저마다 장점을 내세우며 고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성적표를 놓고 본다면 지난 10월 말 현재 은행이 51.7%의 점유율로 우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취급 금융회사별 차이를 알고 상품별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한다. 사업자가 제공하는 운용상품 측면을 보면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은 은행(92%) 생명보험사(96.6%) 손해보험사(97.2%)가 높은 반면 증권사는 62.5%다. 증권사는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22.7%로 은행이나 보험사보다 높다. 적립금 운용 현황을 보면 은행은 91.7%를 예 · 적금으로 운용하고 실적배당상품은 7.3%밖에 되지 않는다. 증권사는 원리금보장상품 중에서는 원리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에 43.9%를 운용하고 예 · 적금은 14.2%로 낮은 수준이다. 또 실적배당 상품 중에서는 채권형 펀드에 21.4%를,주식형 펀드와 혼합형 펀드에는 각각 0.4%,0.1%를 투자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안정적인 수익이 중요한 만큼 주식형 펀드 비중이 은행과 비슷하게 낮다.

보험사는 대부분 보험으로 운용한다. 생보사는 금리확정형 보험에 64.7%를,금리연동형 보험에 27.3%를 운용해 전체 적립금의 92%를 보험상품으로 구성했다. 손보사도 금리확정형 보험에 72.6%를,금리연동형 보험에 21.5%를 투자해 보험상품 비중이 94.1%다.

◆은행,전국 영업망과 안정성은행의 가장 큰 장점은 전국적인 영업망이다. 대형 은행의 경우 지점 수가 1000여개에 달해 접근 가능성이 뛰어나다. 기업 실무담당자 및 근로자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근해 불편함 없이 퇴직연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은행들은 영업점마다 대부분 퇴직연금 전문가를 양성 배치하고 고객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퇴직연금은 가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추가 입금,퇴직급여 지급,자산운용 상담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므로 은행의 전국적 점포망은 큰 강점이다. 특히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엔 영업점이 많은 은행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은 또 고객들과 친숙한 금융회사라는 점에서 고객 친밀도도 뛰어나다. 모든 기업과 근로자들이 은행에서 예금 대출 외환 신용카드 펀드 등 다양한 거래를 해 왔기 때문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은행들은 안정성 측면에서도 총자산 규모가 큰 은행권이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상위 3개 은행의 총자산 규모는 약 200조원 이상(지난해 말 기준)이다. 반면 보험권에서 가장 큰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133조원(지난 3월 말 기준)에 그치고 있다. 삼성증권은 11조원(지난 3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 또 은행은 사업구조가 다양해 리스크가 분산돼 있으나,보험 및 증권은 사업구조가 단조로워 상대적으로 리스크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은행들은 여러 가지 부가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은행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거래하기 때문에 퇴직연금 가입근로자에게 송금수수료 면제,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 면제,환율우대 등 은행 서비스 혜택을 퇴직연금 해지시까지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또 근로자에게 퇴직연금을 포함한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도 가능하다. 퇴직 후에도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에서 매월 수령하는 연금을 모두 은행계좌로 수령하게 되므로 종합적 자산관리가 편리하다.

◆보험사,퇴직보험 상품 운용 경험

보험사는 퇴직연금의 전신인 종업원 퇴직보험과 퇴직보험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던 경험과 탄탄한 영업기반 및 시스템을 기반으로 은행을 맹추격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종신형 퇴직연금을 유일하게 판매할 수 있다는 강점 역시 장기 안정 수익 확보에 한걸음 앞서 있다는 평가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생보사의 경우 퇴직보험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가 있고,장기 자금 운영력에서 은행이나 증권사보다 비교 우위에 있어 향후 연금으로 전환할 대기업들이 종신보험 등을 취급해 온 생보사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향후 퇴직연금 시장이 단기보다는 장기 운용 상품 위주로 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보험사의 장점이다.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 가운데 1년 미만 단기상품 운용 비중을 보면 보험이 57.6%,은행이 84.3%로 나타났다. 고객들이 장기 운용 상품에 관심을 가질수록 종신보험 등 장기상품 운용 경험을 보유한 생보사에 대한 선택 비중이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보험사들의 평가다.

보험사들은 이미 종합적인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신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류근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생보업계는 지난 30년 동안 퇴직보험 등을 운용하면서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운용능력을 쌓아왔다"며 "퇴직연금 시장이 단기 상품 위주의 과열 경쟁 단계를 넘어설 경우 노후 안정수익 확보에 초점을 맞춘 생보사 상품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증권사,고수익이 강점…랩 방식도 도입

증권사는 은행과 보험사 등 경쟁 업종보다 몸집이 가볍고 다양한 자산운용이 가능한 점을 앞세우고 있다. 증권사들은 원금보장형 안전자산 운용에 치중했던 과거 퇴직연금 업계의 경향이 향후 주식과 주가연계증권(ELS) 등 위험자산 비중을 크게 높이는 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을 근로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되면 많은 근로자들이 리스크를 좀 부담하더라도 은행이나 보험사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은행과 보험사에 비해 펀드, 파생금융상품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이고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더욱 치밀하게 구성하는 것을 강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 방식의 퇴직연금 상품도 나오고 있다. 단순히 채권이나 주식을 사놓고 장기 보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 상황에 따라 자동적으로 자산 비중을 변경해주는 '적극적인 매매'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존 퇴직연금 운용 방식대로라면 자산배분 변경은 가입자가 직접 결정해야 했다. 가입자 마음에 쏙 드는 자산배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 상황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랩어카운트 방식의 퇴직연금은 증권사가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배분을 변경해 준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