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찜질방 난민

'부두 위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됐다. 공포가 발사되고 호각이 깨어지고 동아줄이 쳐지고 해,일단 혼란이 멎었으나 그와 동시,이번에는 또 그 속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쌀자루를 떨어뜨린 남편,옷보퉁이가 바뀐 딸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서로 부르고,찾고,꾸짖는 소리로 부두가 떠내려가려는 듯했다. '1950년 12월15일 시작된 흥남 철수 풍경을 그린 김동리 소설의 한 부분이다.

당시 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은 피난민 후송에 난색을 표했으나 정찰기를 타고 흥남부두를 둘러본 후 생각을 바꿨다. 미군의 요청을 받은 화물선 빅토리호가 부두에 닿은 건 며칠 후인 20일.현장을 지켜보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이렇게 지시했다. "배가 가라앉지 않을 만큼 많이 태워라." 7600t급 배에 무려 1만4000여명이 올라 풍랑을 헤치고 거제도에 도착했다. 빅토리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구조한 배로 기네스북에 실렸다. 아몬드 장군이나 레너드 선장은 피난민 돕는 것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여겼던 게 틀림없다. 아무리 남의 나라 일이지만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탈출하는 사람들의 처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피난민들에겐 굶주림과 추위도 가혹했지만 정신적 공황을 견뎌내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로 시작하는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에선 그 정황을 '피눈물을 흘리면서…'로 표현했다.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연평도를 탈출한 주민 1300여명이 인천에서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는 친척집이나 여관에 묵고 있지만 상당수는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부실한 급식으로 연명한다니 '난민'이 따로 없다. 두통,소화불량 등을 호소하며 불안 증세를 보이는 주민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G20 정상회의를 치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그동안 정부는 말만 요란했지 실질적 대책으로 내놓은 건 특별교부세 10억원 지원이 고작이다. 연평도를 빠져나올 때도 정부가 허둥대는 동안 주민들이 알아서 여객선과 어선을 이용했다. 찜질방 역시 주인이 무료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60년 전 흥남철수 때보다 나아진 게 별반 없는 셈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영토를 지키는 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