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회사도 버린 제품 매출 2배로…밥값하는 사내 '슈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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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 슈퍼스타이 대리는 사내에서 '슈스케'로 불린다. 인기를 끌었던 케이블TV 프로그램 '슈퍼스타 K'(슈스케)에서 따온 말이다. 이 대리가 사내에서 슈퍼스타로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있었던 사내 캠페인이 계기가 됐다. 회사에서는 매년 직원들을 대상으로 상품 판매 캠페인을 벌인다. '스스로 만든 상품을 직접 팔아 애사심을 기르고 매출 증대에도 기여하자'는 취지에서다.
회사 먹여살리는 선수들
인맥 총동원 악바리 영업…고참들도 "독종이다" 혀 내둘러
예선서 탈락시키는 건데…
"대학원 다닌다" 조직 도움받더니 고맙다 한마디 없이 이직 줄행랑
이 대리는 캠페인에서 발군의 1등을 했다. 그것도 거래 기업에 상품을 무더기로 판 것이 아니다. 친구나 친척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상품을 팔았다. 영업으로 밥 먹고 사는 영업직도 이 대리의 실적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전국의 김 과장,이 대리는 하루하루 오디션을 치른다. 하루아침에 탈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예선을 통과해야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본선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슈퍼스타'로 등극한다. 사내 '슈스케'는 특유의 의지와 열정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밥값' 제대로 하는 자가 슈퍼스타
회사의 '슈퍼스타'는 역시 돈을 많이 벌어오는,한마디로 '밥값'을 제대로 하는 사원이다. 국내 한 증권사의 트레이딩팀(회사의 자기자본으로 주식이나 선물 · 옵션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팀)은 사내에서 "저 팀이 '회사를 먹여 살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팀 멤버들은 창업자가 회사를 설립할 때 특별히 모셔온 '선수'들이다. 매월 회사에 미리 약속한 액수를 벌어다 주고,수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가져가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한 애널리스트는 "시장 상황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회사에 약속한 금액을 매월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걸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젊은 나이에도 '슈퍼스타'로 등극하는 사례는 영업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 영업직으로 입사한 최모씨(32)는 입사 직후 생전 처음 듣는 브랜드 영업을 맡았다. 회사의 주력상품 중 하나였던 여성용품 브랜드이긴 했지만 이미 회사의 기존 브랜드 시장점유율이 막강해 새로 론칭한 브랜드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
최씨는 이를 악물고 유통업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학연 지연 등 인맥을 총동원해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얻었다. 여자친구 앞에서나 부릴 법한 애교까지 동원했다. 고군분투 끝에 최씨가 맡은 브랜드는 전보다 두 배 이상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최씨를 눈여겨본 상사는 다음 인사 때 회사 주력 브랜드 영업팀에 그를 배치했다. 최씨는 현재 그 팀의 '에이스'가 됐다. 최씨는 "초기에 다른 동기들보다 능력을 과소평가받아 비주력 브랜드를 맡았다고 여겨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했다.
◆슈퍼스타 되려면 이미지 관리는 기본이미지 관리도 '슈퍼스타'의 기본 요건이다.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조모씨(34)는 "에이스들은 대체로 아침에 일찍 나오고,인간관계가 무난하며,학벌이나 가정환경도 어느 정도 받쳐주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대기업 기획팀에 근무하는 한모씨(31)의 상사는 사내에서 '슈퍼스타'로 통한다. 한씨의 상사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를 지녔다. 주말마다 취미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까지 한다니 평범한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가 죽는다. 야근도 다른 사람에 비해 적게 하는 편이지만 업무 처리는 가장 완벽하다.
상사의 대학 후배인 한씨는 "백조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오리"라고 상사를 평가했다. 한씨는 "남들보다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을 집에 챙겨가서 밤을 새우며 일한다더라"며 "'여유롭지만 성공한 남자'가 그의 컨셉트라니 참 피곤한 인생"이라고 귀띔했다. ◆후배만 알아주는 슈퍼스타
후배와 선배 사이 평판이 갈리는 경우도 있다. 중견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윤모 차장(38)이 그런 경우다. 같은 부서 후배들은 윤 차장을 "회사에서 가장 믿음직하고 멋진 선배"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사회생활로 '머리가 굵어진' 사람들은 정반대다. 이는 윤 차장의 성격 때문이다. 그는 윗사람 면전에서 "그때 상부에서 이렇게 판단해서 저희가 따른 게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바른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올린 실적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회사에 갓 입사한 후배들에게는 강직한 선배라는 이미지로 추앙받지만 사회 물정을 아는 동료에게 윤 차장은 '가까이하면 피곤한 당신'이다.
윤 차장과 같은 팀에서 일하는 차모씨(29)는 이렇게 푸념했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 좀 굽히고 적당히 입에 발린 말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차장 성격이 그렇다 보니 윗선에서도 빛이 날 만한 업무는 우리 팀에 잘 안 주려고 합니다. 아부하기 바쁜 상사도 꼴불견이지만,'정의의 히어로' 놀이를 하는 분도 피곤하긴 매한가지예요. "
◆너 예선은 대체 어떻게 통과한거니?
회사에는 본선까지 올라가 자웅을 겨룰 '슈퍼스타'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용케 예선(입사시험)을 통과해 본선(입사)까지 진출했을까' 의심스러운,'이미 탈락시켰어야 마땅한 자'들도 존재한다.
한 정보기술(IT)업체에 근무하는 한모씨(30)는 같은 팀 동기와 함께 협력업체 직원들을 만나야 하는 날이면 식은땀이 흐른다. 한씨의 회사는 여러 협력업체 사이에서 '갑'으로 통한다. 한씨의 동기는 '갑'이라는 자신의 지위에 도취된 나머지 '을'들을 무시하는 데 재미가 들려있다는 게 한씨의 한탄이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협력업체 대리가 "저도 사실은 대학 졸업 전 그 회사에 입사지원했었는데 그만 서류에서 떨어졌지 뭐예요"라고 가볍게 말을 건넸다. 나름대로 '아이스브레이킹'이었으나 한씨의 동기는 "좋은 대학 나와서 열심히만 살았으면 개나 소나 다 올 수 있는 회사예요"라고 거드름을 피웠다.
한 화학소재기업 총무팀에 근무하는 차모 과장(35)은 최근 동료의 배신에 치를 떨어야 했다. 차 과장의 입사 동기인 박모 과장이 그 주인공.박 과장은 8년 전 차 과장에게 "입사 직전 대학원 수업듣던 게 있었는데 한 학기 남았다"며 야근을 당분간 대신 서줄 것을 부탁했다. 차 과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대여섯번 야근을 해줬다. 다른 팀원들도 협조했다.
1년 뒤,박 과장은 술 한잔 사겠다고 했다. "박사 코스에 합격했는데 숙직과 출장을 몇 번만 대신 처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또야?' 속으로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학위를 따면 회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난해 박사학위를 딴 박 과장은 대기업으로 떠나버렸다. 차 과장은 "진작부터 회사에 미련이 없던 동료를 위해 조직이 8년이나 투자했다는 게 어이없을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이고운/이관우/김동윤/이상은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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