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외환銀 MOU…거래소까지 '압박'

현대그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과 일부 채권단은 물론 금융감독당국인 한국거래소까지 나서 현대그룹을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전날(29일)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현대건설 인수 MOU를 맺었을 때만 해도 이번 인수ㆍ합병(M&A)의 9부 능선을 밟은 듯 보였다. 현대그룹도 곧바로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MOU는 올바르고 공정한 결과였다"며 한시름 덜어낸 모습이었다.

그러나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이 '자금조달 과정에 위법성이 없었는지 여부도 파악하지 않고 맺은 특혜 MOU'라며 채권단을 압박, 시장도 예상치 못한 현대차그룹의 반격에 술렁거렸다.

여기에 채권단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나 파장은 더 커졌다. 외환은행이 다른 채권은행(정책금융공사, 우리금융 등)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MOU를 체결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MOU 원천 무효'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감독당국인 한국거래소가 결국 나섰다. 거래소가 현대그룹에 '현대건설 인수자금 조달 관련 프랑스 현지법인에 담보, 채무보증 등 제공 여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이다.

시장에선 거래소가 우선협상대상자, 예비협상자, 주채권은행, 나머지 채권단 등 '4파전' 싸움에 중재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거래소가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답변을 해 줄 것을 요구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거래소의 이번 조회공시 요구에 성실한 답변을 줄 것이라는 시각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현대그룹이 그간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밝힌 내용만 정리해 답변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현대그룹은 실제 최근까지 "입찰 시 채권단이 요구한 모든 자료와 인수자금 관련 소명 자료를 내놓은 바 있어 추가로 대출계약서 등을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거래소는 그래도 조회공시를 요구했어야 했다는 것. 거래소 관계자는 "현대건설 M&A의 이해당사자인 채권은행이 직접 현대그룹에 인수대금 관련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조회공시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아울러 "만일 현대그룹이 조회공시 답변을 한 이후에 허위공시 및 공시불이행 사항이 적발될 경우엔 벌점을 부여받아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면서 "현대그룹도 신중히 답변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