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회에 발목 잡힌 지식재산법안

선진국 앞다퉈 정책강화 나서…경쟁력 제고 위해 입법화 시급
지난 수년간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은 지식재산기본법 제정과 이를 통한 국가 지식재산 정책의 강화를 애타게 기다려 왔다. 그러나 지난 7월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지식재산기본법이 이번 회기에 통과될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그 사이 경쟁국들은 지식재산 정책을 재정비하고 국가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도 지식재산기본법 제정이 이렇게 지연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 장래를 위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개인과 사회,국가에 직접적으로 경쟁의 핵심역량이 되고 있다는 것은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학이 제 법칙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진화하는 사고방식이라면,지식재산은 이것을 이용해 인류에게 경제적 편익을 제공하는 행동양식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위대한 설계'에서 우주는 스스로 자기 존재를 정의한다지만 지식재산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재산이란 것은 나와 역할이 다른 남을 사회적으로 구속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칫 분규를 일으킬 소지도 있는 것이며,그 성격이 사회나 국가의 정책에 따라 차이 날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지식재산권은 국가마다 다르다. 뿐만 아니라 지식재산은 갖고 있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인류 활동에 편익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준화 혹은 권리화가 그것이다. 표준화는 지식공유라는 방식으로 더 큰 이익을 유도하는 사회적 인증이며 권리화는 특정 기술에 대해 국가가 일정기간 독점적으로 사용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즉 지식재산권은 국가에서 지식가치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간 과학기술의 권리화는 특허청에서 담당했지만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행정이 정부 모든 부처에 분산 분포하고 적용조건에 균형을 잃고 있다면 이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특히 이해가 걸린 국가 간 조약이나 규칙이 지식재산 행정의 난맥상으로 인해 수시로 달라진다면 국가적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타 분야 간의 협력, 즉 과학과 예술이나 문화,이질적인 분야간 융합연구,국가간의 국제협력 사업,그리고 기술공유 및 보호와 같은 분야에서 이해 상충이 발생할 소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산학협력의 부진,특허관리와 자금 문제는 기업과 대학을 혼란하게 하고,또한 기댈 곳이 없는 중소기업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기술유출과 분쟁은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나아가 국가경쟁력에까지 위협을 주고 있다. 이러한 혼돈은 바로 지식재산의 입안과 관리가 여러 부처에 분산돼 다르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친특허 정책을 추진해 왔고 일본도 2002년 지식재산기본법을 마련해 지식재산입국을 천명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산업재산권 전략을 수립했으며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2009년 지식재산전략을 국가 3대 전략으로 공표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한가로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선진국들이,또 중국이 왜 국가 차원에서 지식재산 정책 강화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국회에는 정부 법안 외에 김영선 의원,이종혁 의원이 제안한 안도 있다.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지식재산 정책의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식재산기본법이 조속히 입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 발전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무엇보다 절실한 마당에 이보다 더 시급한 국가 과제도 없을 것이다.

김종득 <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